저는 군마현 북부에 있는 사립 여중에 다녔어요. 소위 떵떵거리는 집안의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었죠. 반 아이들이 다들 향토 기업 사장, 국회의원, 땅을 많이 소유한 지역 유지 같은 부자들의 딸이라 저는 늘 기죽어 지냈어요.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 간의 신분 격차랄까 그런 게 역시 있었죠. 부자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어서 서열별로 무리를 만들었어요. 저는 제일 밑바닥이었고요. ‘회사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낮잡아 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명품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은근히 놀린다든가, 수학여행 조 편성 때 짝꿍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니까 “하야사카랑 같이 다니면 좋은 가게에는 못 가잖아.” 하고 거절한다든가. 부모님은 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무척 애쓰셨겠지만, 저로서는 황새들 사이의 뱁새가 된 기분이라 전혀 달갑지 않았어요.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쾌적하게 생활하려면 학비보다 몇 배는 많은 돈이 들어요. 고급스러운 물건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지 않으면, 비참한 꼴을 당하니까요.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저와 친하게 지내 준 아이가 있었어요. 이름은 미쓰코고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죠. 미쓰코는 반에서 최상위 서열이었는데, ‘히쿠라 하우스’라고 주부 지방에서 손꼽히는 건축 회사 사장의 딸이었어요. 중간 길이의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고, 뽀얀 피부에 눈매가 시원시원하니 귀여운 아이였죠.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갑자기 말을 걸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둘이서 신나게 떠들었던 게 기억나요. 그 후로 점점 친해져서 수다를 떨거나 교환 일기를 쓰기도 했고요. 어느 날 제가 소녀 만화 《꾀부리는 페퍼 걸》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쩐 우연인지 미쓰코도 그 만화를 즐겨 본다는 거예요. 미쓰코와 취미가 같다는 게 정말 기뻐서 그 후로 만화 이야기만 늘어놨죠. 하기야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일방적으로 떠들었던 것도 같네요. 미쓰코는 늘 방글방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어요. 두 달쯤 지나서 여름방학이 가까워졌을 무렵, 미쓰코가 저한테 제안하더라고요. “여름방학 때 너희 집이랑 우리 집에서 하룻밤씩 놀지 않을래?” 그러면서요. 저는 기쁜 한편으로 난처했죠. 저희 집은 작은 주택이었거든요. 게다가 제 방은 다다미 여섯 장 크기의 일본식 방이라 부잣집 딸인 미쓰코가 도저히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요. 많이 망설인 끝에 저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승부수는 《꾀부리는 페퍼 걸》이었죠. 제 방에 단행본을 전권 모아 놨고, 관련 상품도 많았거든요. 호화로운 방은 아니지만 이것만 있으면 미쓰코가 기뻐해 줄 것 같았어요. 밤새 신나게 이야기할 작정이었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이라면 신분 격차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분으로……. 물러 빠진 생각이었지만요. 하야사카 씨는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잠시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했어요. 미쓰코가 이겨서 일단 미쓰코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죠.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첫 번째 토요일, 필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건 처음이라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죠. 그런데 대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기분은 싹 날아갔어요. 집이 클 거라고 예상이야 했지만, 실제로 본 미쓰코네 집은 제 빈약한 상상력을 완전히 뛰어넘었거든요. 백 명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거대했고, 정원은 영화에 나오는 영국 정원 같았죠. 이런 걸 ‘호화 저택’이라고 하는구나. 그런 감상과 함께 저와 미쓰코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절망적일 만큼 똑똑히 깨달았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멋진 남자가 나왔어요. 긴장되는 마음으로 용건을 알렸더니 남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2층 방에 계세요.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하고 깍듯하게 저를 안내해 주더군요. ‘이 사람은 분명 고용돼서 일하는 사람이겠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어요. 집에 사람을 두고 부리다니 원래 같으면 놀라야 마땅하겠지만, 그때 저는 오히려 수긍했답니다. 이런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하다……. 절로 그런 느낌이 들 만큼 어마어마한 호화 저택이었거든요. 현관으로 들어서자 좌우에 똑같이 생긴 계단이 하나씩 있었어요. 1층에는 내빈실과 고용인실, 주방 등이 있고, 가족은 기본적으로 2층에서 생활한다고 저를 안내하는 남자가 알려 주더군요. 미쓰코의 아버지가 설계했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미쓰코의 아버지는 건축 회사 사장이에요. 아빠가 사장이면 집을 지어 주는구나…… 하고 순수하게 감동했던 게 기억나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방의 가족 기업이라서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요. 계단을 올라갔더니 복도에서 미쓰코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까먹지 말고 미쓰코의 가족에게 인사하라고 시킨 게 기억나서, 일단 할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어요. 한가운데에 있는 방이요. 문을 열자 달짝지근한 향기가 확 풍겼어요. 아마 향을 피워 둔 거겠죠. 멋진 세간과 그림으로 꾸민 방에 들어갔더니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어요. ‘할머니’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생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분이었죠. 다리가 완전히 가려질 만큼 긴 치마 차림에 위에는 꽃무늬 카디건을 걸쳤고, 양손에는 하얀 장갑을 끼고 계셨어요. 마치 그림 같은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니까 할머니가 빙긋 웃으며 “어서 오렴.” 하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인사를 마치고 같이 미쓰코의 방으로 갔어요. 할머니 방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민은 평생 손에 넣을 수 없을 법한 방이었답니다. 제일 눈에 띈 건 안쪽에 있는 큼지막한 옷장이었어요. 옷장이야 저희 집에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 비교하면 실례일 만큼 커다랗고 고급스럽더라고요. 저희는 방에서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어요. 그러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미쓰코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방에서 나갔어요. 혼자 남은 저는 별천지 같은 방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어요. 진귀한 장난감이나 해외 화장품 등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지만, 역시 옷장에 제일 관심이 가더군요. 다가가서 찬찬히 살펴봤는데 저희 집 옷장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어요. 문짝에 새겨진 무늬며, 매끄러운 광택이며……. 정말 멋져서 한숨이 나왔답니다. 문에 뚫린 열쇠 구멍을 보고 ‘잠글 수 있구나!’ 하면서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신기하지 않은 일에도 감동했던 게 기억나요. 잠시 구경하고 있으려니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점점 궁금해지더라고요. 예의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옷장 손잡이를 잡았어요. 비겁하죠. 보여 달라고 미쓰코에게 직접 부탁하면 될 텐데 말이에요. 손잡이를 살짝 당기자 옷장이 소리도 없이 열렸어요. 안에는 책이 잔뜩 들어 있었고요. 옷장이 아니라 책장이었던 거예요. 문학서, 도감, 외국어 사전 등으로 가득해서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다니 역시 부잣집 아이는 머리가 좋구나.’ 하고 감탄했어요. 하지만 책등을 살펴보다가 묘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희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 《꾀부리는 페퍼 걸》이 없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만화책이라고는 한 권도 없었죠. 의아한 기분으로 책장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미쓰코가 돌아오는구나 싶어 얼른 책장 문을 닫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죠. 그러고 나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할머니가 안 오셔서 걱정했더니 “할머니는 늘 자기 방에서 드셔.” 하고 미쓰코가 알려 주더군요. 밥을 다 먹고 홈 시어터로 영화를 한 시간쯤 본 후에 씻었어요. 잠옷으로 갈아입고 둘이서 한 침대에 눕자, 얼마 안 있으면 즐거운 하루가 끝난다는 게 얼마나 아쉽던지. 실은 밤새 미쓰코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불을 끄자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어느 틈엔가 잠들어 버렸답니다. 잠들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눈을 떴더니 방은 아직 캄캄했고, 미쓰코는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더군요. 저는 보물을 감상하듯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곱씹어 봤어요. 정말이지 전부 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다만…… 딱 한 가지가 생선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죠. 책장요. 그렇게 좋아한다던 《꾀부리는 페퍼 걸》이 한 권도 없다니 역시 이상했어요. 실은 있었는데 내가 못 본 것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한 번 더 살펴보려고 했죠. 가방에 넣어 온 손전등을 꺼내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장으로 가서 손잡이를 천천히 당겼어요. ……그런데 안 열리는 거예요. 힘을 줘서 한 번 더 당겼어요.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그때 문에 뚫린 열쇠 구멍에 시선이 멈췄죠. 그 순간 등골이 오싹했답니다. 혹시 아까 멋대로 책장을 열어 본 걸 미쓰코가 눈치챈 것 아닐까. 그래서 또 훔쳐보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것 아닐까……. 그때 뒤쪽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침대를 홱 돌아봤어요. 미쓰코는 아까와 다름없이 푹 잠들어 있었죠. 어쩐지 저 자신이 아주 치졸한 인간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책장에 《꾀부리는 페퍼 걸》이 없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겠어요? 만화만 다른 곳에 보관해 놨는지도 모르고, 어딘가 서재가 있을 수도 있는걸요. 그런데 밤중에 몰래 침대를 빠져나와 엿보려 하다니……. 미쓰코에게 몹시 미안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 미쓰코가 저를 깨웠어요. 시계를 보자 5시밖에 안 됐더라고요. 하지만 미쓰코가 어젯밤에 못 놀았으니 빨리 놀자며 트럼프 카드를 준비하길래, 저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로 했죠. 한동안 트럼프를 하며 놀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방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복도에 할머니가 계셨어요. 할머니는 오른손으로 벽을 짚으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향해 걸어가셨어요. 분명 다리가 불편하셨던 거겠죠. 더군다나 긴치마가 바닥에 쓸리는 거예요. 혹시나 밟고 넘어지시면 어쩌나 걱정돼서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얼른 달려갔죠. 그러자 “괜찮아. 바로 저기 화장실에 가려는 거니까.” 하고 거절하시더군요. 하지만 “네, 그렇군요.” 하고 물러설 수도 없어서 “저도 화장실에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요.” 하고 부축하려 했는데, “신경 쓸 것 없어. 먼저 가렴.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잖니.” 하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꽤 급했던 터라 저 혼자 먼저 가기로 했죠. 그랬던 게 지금도 후회가 되네요.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있을 때였어요. 문밖에서 갑자기 ‘쿠당’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뭔가 묵직한 물건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저는 황급히 문을 열었어요. 복도에 계셔야 할 할머니가 안 보이더군요. 저는 할머니를 찾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복도를 되돌아가서 할머니 방으로 향했어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에요. ……어쩌면 바로 근처에 있을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방에 할머니는 안 계셨어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는데 1층이 점차 소란스러워지더군요. 고용인들의 비명과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고, 거기에 섞여 누군가 전화하는 목소리도 들렸어요.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하자 미쓰코는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죠. 저는 끝까지 할머니를 보지 못했고요.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가 겁나서 구석에 처박혀 아래만 보고 있었거든요. 정말 약아빠졌죠. 그런데도 미쓰코는 병원에 갈 때 저를 보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 줬어요. 이런 일이 벌어져서 미안하다면서요. 지금 제일 마음 아픈 건 미쓰코일 텐데 나를 걱정해 주다니 참 착한 아이구나 싶었죠. 동시에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미쓰코를 걱정하기는커녕 저 자신을 다독이느라 바빴거든요. 내내 속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 중얼거리기만 했죠. “내 탓이 아니야.”라고. 그로부터 이틀 후, 미쓰코의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게 치명적이었대요. 나중에 잠깐 와 달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갔죠. 뭔가 의심하는 게 아니라 사고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제가 본 대로 설명했어요. 경찰도 할머니를 왜 부축해 주지 않았느냐고 저를 탓하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제가 제일 바랐던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은 해 주지 않았어요. 그 후로 미쓰코와는 소원해졌어요. 당연하죠.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한들 꺼림칙한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요. 결국 미쓰코가 저희 집에 자러 오기로 했던 약속도 흐지부지됐고요. 이게 제가 겪은 일이에요.
저는 군마현 북부에 있는 사립 여중에 다녔어요. 소위 떵떵거리는 집안의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었죠. 반 아이들이 다들 향토 기업 사장, 국회의원, 땅을 많이 소유한 지역 유지 같은 부자들의 딸이라 저는 늘 기죽어 지냈어요.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 간의 신분 격차랄까 그런 게 역시 있었죠. 부자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어서 서열별로 무리를 만들었어요. 저는 제일 밑바닥이었고요. ‘회사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낮잡아 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명품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은근히 놀린다든가, 수학여행 조 편성 때 짝꿍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니까 “하야사카랑 같이 다니면 좋은 가게에는 못 가잖아.” 하고 거절한다든가. 부모님은 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무척 애쓰셨겠지만, 저로서는 황새들 사이의 뱁새가 된 기분이라 전혀 달갑지 않았어요.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쾌적하게 생활하려면 학비보다 몇 배는 많은 돈이 들어요. 고급스러운 물건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지 않으면, 비참한 꼴을 당하니까요.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저와 친하게 지내 준 아이가 있었어요. 이름은 미쓰코고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죠. 미쓰코는 반에서 최상위 서열이었는데, ‘히쿠라 하우스’라고 주부 지방에서 손꼽히는 건축 회사 사장의 딸이었어요. 중간 길이의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고, 뽀얀 피부에 눈매가 시원시원하니 귀여운 아이였죠.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갑자기 말을 걸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둘이서 신나게 떠들었던 게 기억나요. 그 후로 점점 친해져서 수다를 떨거나 교환 일기를 쓰기도 했고요. 어느 날 제가 소녀 만화 《꾀부리는 페퍼 걸》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쩐 우연인지 미쓰코도 그 만화를 즐겨 본다는 거예요. 미쓰코와 취미가 같다는 게 정말 기뻐서 그 후로 만화 이야기만 늘어놨죠. 하기야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일방적으로 떠들었던 것도 같네요. 미쓰코는 늘 방글방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어요. 두 달쯤 지나서 여름방학이 가까워졌을 무렵, 미쓰코가 저한테 제안하더라고요. “여름방학 때 너희 집이랑 우리 집에서 하룻밤씩 놀지 않을래?” 그러면서요. 저는 기쁜 한편으로 난처했죠. 저희 집은 작은 주택이었거든요. 게다가 제 방은 다다미 여섯 장 크기의 일본식 방이라 부잣집 딸인 미쓰코가 도저히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요. 많이 망설인 끝에 저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승부수는 《꾀부리는 페퍼 걸》이었죠. 제 방에 단행본을 전권 모아 놨고, 관련 상품도 많았거든요. 호화로운 방은 아니지만 이것만 있으면 미쓰코가 기뻐해 줄 것 같았어요. 밤새 신나게 이야기할 작정이었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이라면 신분 격차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분으로……. 물러 빠진 생각이었지만요. 하야사카 씨는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잠시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했어요. 미쓰코가 이겨서 일단 미쓰코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죠.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첫 번째 토요일, 필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건 처음이라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죠. 그런데 대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기분은 싹 날아갔어요. 집이 클 거라고 예상이야 했지만, 실제로 본 미쓰코네 집은 제 빈약한 상상력을 완전히 뛰어넘었거든요. 백 명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거대했고, 정원은 영화에 나오는 영국 정원 같았죠. 이런 걸 ‘호화 저택’이라고 하는구나. 그런 감상과 함께 저와 미쓰코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절망적일 만큼 똑똑히 깨달았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멋진 남자가 나왔어요. 긴장되는 마음으로 용건을 알렸더니 남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2층 방에 계세요.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하고 깍듯하게 저를 안내해 주더군요. ‘이 사람은 분명 고용돼서 일하는 사람이겠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어요. 집에 사람을 두고 부리다니 원래 같으면 놀라야 마땅하겠지만, 그때 저는 오히려 수긍했답니다. 이런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하다……. 절로 그런 느낌이 들 만큼 어마어마한 호화 저택이었거든요. 현관으로 들어서자 좌우에 똑같이 생긴 계단이 하나씩 있었어요. 1층에는 내빈실과 고용인실, 주방 등이 있고, 가족은 기본적으로 2층에서 생활한다고 저를 안내하는 남자가 알려 주더군요. 미쓰코의 아버지가 설계했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미쓰코의 아버지는 건축 회사 사장이에요. 아빠가 사장이면 집을 지어 주는구나…… 하고 순수하게 감동했던 게 기억나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방의 가족 기업이라서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요. 계단을 올라갔더니 복도에서 미쓰코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까먹지 말고 미쓰코의 가족에게 인사하라고 시킨 게 기억나서, 일단 할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어요. 한가운데에 있는 방이요. 문을 열자 달짝지근한 향기가 확 풍겼어요. 아마 향을 피워 둔 거겠죠. 멋진 세간과 그림으로 꾸민 방에 들어갔더니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어요. ‘할머니’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생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분이었죠. 다리가 완전히 가려질 만큼 긴 치마 차림에 위에는 꽃무늬 카디건을 걸쳤고, 양손에는 하얀 장갑을 끼고 계셨어요. 마치 그림 같은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니까 할머니가 빙긋 웃으며 “어서 오렴.” 하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인사를 마치고 같이 미쓰코의 방으로 갔어요. 할머니 방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민은 평생 손에 넣을 수 없을 법한 방이었답니다. 제일 눈에 띈 건 안쪽에 있는 큼지막한 옷장이었어요. 옷장이야 저희 집에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 비교하면 실례일 만큼 커다랗고 고급스럽더라고요. 저희는 방에서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어요. 그러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미쓰코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방에서 나갔어요. 혼자 남은 저는 별천지 같은 방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어요. 진귀한 장난감이나 해외 화장품 등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지만, 역시 옷장에 제일 관심이 가더군요. 다가가서 찬찬히 살펴봤는데 저희 집 옷장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어요. 문짝에 새겨진 무늬며, 매끄러운 광택이며……. 정말 멋져서 한숨이 나왔답니다. 문에 뚫린 열쇠 구멍을 보고 ‘잠글 수 있구나!’ 하면서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신기하지 않은 일에도 감동했던 게 기억나요. 잠시 구경하고 있으려니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점점 궁금해지더라고요. 예의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옷장 손잡이를 잡았어요. 비겁하죠. 보여 달라고 미쓰코에게 직접 부탁하면 될 텐데 말이에요. 손잡이를 살짝 당기자 옷장이 소리도 없이 열렸어요. 안에는 책이 잔뜩 들어 있었고요. 옷장이 아니라 책장이었던 거예요. 문학서, 도감, 외국어 사전 등으로 가득해서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다니 역시 부잣집 아이는 머리가 좋구나.’ 하고 감탄했어요. 하지만 책등을 살펴보다가 묘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희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 《꾀부리는 페퍼 걸》이 없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만화책이라고는 한 권도 없었죠. 의아한 기분으로 책장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미쓰코가 돌아오는구나 싶어 얼른 책장 문을 닫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죠. 그러고 나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할머니가 안 오셔서 걱정했더니 “할머니는 늘 자기 방에서 드셔.” 하고 미쓰코가 알려 주더군요. 밥을 다 먹고 홈 시어터로 영화를 한 시간쯤 본 후에 씻었어요. 잠옷으로 갈아입고 둘이서 한 침대에 눕자, 얼마 안 있으면 즐거운 하루가 끝난다는 게 얼마나 아쉽던지. 실은 밤새 미쓰코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불을 끄자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어느 틈엔가 잠들어 버렸답니다. 잠들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눈을 떴더니 방은 아직 캄캄했고, 미쓰코는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더군요. 저는 보물을 감상하듯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곱씹어 봤어요. 정말이지 전부 다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다만…… 딱 한 가지가 생선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죠. 책장요. 그렇게 좋아한다던 《꾀부리는 페퍼 걸》이 한 권도 없다니 역시 이상했어요. 실은 있었는데 내가 못 본 것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한 번 더 살펴보려고 했죠. 가방에 넣어 온 손전등을 꺼내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장으로 가서 손잡이를 천천히 당겼어요. ……그런데 안 열리는 거예요. 힘을 줘서 한 번 더 당겼어요.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그때 문에 뚫린 열쇠 구멍에 시선이 멈췄죠. 그 순간 등골이 오싹했답니다. 혹시 아까 멋대로 책장을 열어 본 걸 미쓰코가 눈치챈 것 아닐까. 그래서 또 훔쳐보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것 아닐까……. 그때 뒤쪽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침대를 홱 돌아봤어요. 미쓰코는 아까와 다름없이 푹 잠들어 있었죠. 어쩐지 저 자신이 아주 치졸한 인간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책장에 《꾀부리는 페퍼 걸》이 없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겠어요? 만화만 다른 곳에 보관해 놨는지도 모르고, 어딘가 서재가 있을 수도 있는걸요. 그런데 밤중에 몰래 침대를 빠져나와 엿보려 하다니……. 미쓰코에게 몹시 미안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 미쓰코가 저를 깨웠어요. 시계를 보자 5시밖에 안 됐더라고요. 하지만 미쓰코가 어젯밤에 못 놀았으니 빨리 놀자며 트럼프 카드를 준비하길래, 저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로 했죠. 한동안 트럼프를 하며 놀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방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복도에 할머니가 계셨어요. 할머니는 오른손으로 벽을 짚으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향해 걸어가셨어요. 분명 다리가 불편하셨던 거겠죠. 더군다나 긴치마가 바닥에 쓸리는 거예요. 혹시나 밟고 넘어지시면 어쩌나 걱정돼서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얼른 달려갔죠. 그러자 “괜찮아. 바로 저기 화장실에 가려는 거니까.” 하고 거절하시더군요. 하지만 “네, 그렇군요.” 하고 물러설 수도 없어서 “저도 화장실에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요.” 하고 부축하려 했는데, “신경 쓸 것 없어. 먼저 가렴.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잖니.” 하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꽤 급했던 터라 저 혼자 먼저 가기로 했죠. 그랬던 게 지금도 후회가 되네요.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있을 때였어요. 문밖에서 갑자기 ‘쿠당’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뭔가 묵직한 물건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저는 황급히 문을 열었어요. 복도에 계셔야 할 할머니가 안 보이더군요. 저는 할머니를 찾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복도를 되돌아가서 할머니 방으로 향했어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에요. ……어쩌면 바로 근처에 있을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방에 할머니는 안 계셨어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는데 1층이 점차 소란스러워지더군요. 고용인들의 비명과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고, 거기에 섞여 누군가 전화하는 목소리도 들렸어요.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하자 미쓰코는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죠. 저는 끝까지 할머니를 보지 못했고요.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가 겁나서 구석에 처박혀 아래만 보고 있었거든요. 정말 약아빠졌죠. 그런데도 미쓰코는 병원에 갈 때 저를 보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 줬어요. 이런 일이 벌어져서 미안하다면서요. 지금 제일 마음 아픈 건 미쓰코일 텐데 나를 걱정해 주다니 참 착한 아이구나 싶었죠. 동시에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미쓰코를 걱정하기는커녕 저 자신을 다독이느라 바빴거든요. 내내 속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 중얼거리기만 했죠. “내 탓이 아니야.”라고. 그로부터 이틀 후, 미쓰코의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게 치명적이었대요. 나중에 잠깐 와 달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갔죠. 뭔가 의심하는 게 아니라 사고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제가 본 대로 설명했어요. 경찰도 할머니를 왜 부축해 주지 않았느냐고 저를 탓하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제가 제일 바랐던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은 해 주지 않았어요. 그 후로 미쓰코와는 소원해졌어요. 당연하죠.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한들 꺼림칙한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요. 결국 미쓰코가 저희 집에 자러 오기로 했던 약속도 흐지부지됐고요. 이게 제가 겪은 일이에요.
일찍이 나가노현 서부 야케다케산 기슭에 거대한 건축물이 있었다. 이름은 ‘재생의 성역’. ……컬트 교단 ‘재생회’의 종교 시설로 사용됐다고 한다. 교단은 이미 해산했고 시설도 철거됐으므로, 그 실체를 자세히 알아보려면 과거의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1994년 8월에 발매된 한 월간지에 실린 기사로,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재생의 성역’ 잠입 리포트다. 기사는 원래 ‘전편’과 ‘후편’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지만, 전편이 공개된 후 어느 기업에서 클레임이 들어와서 다음 호에 실릴 후편은 다른 기사로 대체돼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 보여 드릴 수 있는 내용은 ‘전편’뿐이다. 덧붙여 본문 속 삽화는 잡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컬트 교단의 내부를 철저히 파헤친다 ‘재생회’ 시설 잠입 리포트 전편〉 ☆독특한 운영 방침? ‘재생회’는 나가노현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컬트 교단이다. 그들의 교주는 살아 있는 신 미도 히카리(통칭: 성모님)다. ‘살아 있는 신’이란 살아 있는 인간을 신으로 숭배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요컨대 “내가 바로 신이니 나를 숭배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교주 밑에 신자가 모여들어서 생긴 교단이라는 뜻이다. 그런 컬트 교단 자체는 드물지 않지만, ‘재생회’에는 몇 가지 별난 특징이 있다. ① ‘어떤 사정’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단 지금까지 수많은 컬트 교단에 잠입해 취재하면서 만난 신자들은 실로 다양했다. 처자식을 가진 부자가 있는가 하면, 홀몸인 가난뱅이도 있었다. 도쿄 대학교 졸업생이 있는가 하면, 중졸도 있었다. 성장 환경, 연령, 성별, 직업, 취미……. 전부 제각각이라 ‘이런 유형의 사람이 종교에 잘 빠진다’라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재생회’ 신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어떤 사정’을 끌어안은 사람만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신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사정’이란 대체 무엇일까. ② 세뇌하지 않는 종교 컬트 교단은 신비한 초능력(그 정체는 대부분 단순한 마술이지만)을 보여 주거나, 폭력 또는 불법 약물을 사용해 신자를 세뇌할 때가 많다. 하지만 ‘재생회’는 그런 방법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도 신자의 신앙심을 얻어 내 고가의 상품을 판매한다고 한다. 상품이라고 해도 항아리나 수정 구슬 같은 쩨쩨한 물건이 아니다. 수백만 엔, 때로는 수천만 엔을 호가하는 초고가 상품을 팔아넘긴다. 교단은 전화 권유와 입소문만으로 발족한 지 6년 차에 수백 명의 신자를 모았다고 한다. 인원수와 금액을 곱하면 그들의 벌이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무서울(부러울) 따름이다. ③ 특이한 수행 방법 나가노현 서부에 ‘재생회’가 소유한 시설이 있다. 이름하여 ‘재생의 성역’. 한 달에 네 번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신자들이 ‘재생의 성역’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는데, 그 수행 방법이 참으로 특이하다고 한다. 한 달에 몇 번밖에 하지 않는 ‘특이한 수행’. ……바로 거기에 신자를 사로잡아 고가의 물건을 사게 하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잠입의 프로라고 자부하는 필자가 ‘재생의 성역’에 직접 숨어들어 취재하기로 했다. 당연히 시설에 잠입하려면 교단에 입회해야 한다. 매번 이것이 걸림돌이다. 컬트 교단은 대부분 내부 정보가 세상에 새어 나가는 걸 싫어하므로, 입회 희망자를 철저하게 조사해 ‘잠입 취재가 목적인 기자가 아닌지’ 판가름한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필자도 그들 특유의 후각에 발각돼 거절당할 때가 많다. 그런데 다른 컬트 교단에 비해 ‘재생회’는 문턱이 상당히 낮았다. 전화로 이름, 나이, 주소를 말한 후 ‘어떤 질문’에 대답하고(질문 내용은 교단의 정체와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다음 호에 실릴 후편에서 밝히겠다) 마지막으로 교단에 신앙을 맹세하자 바로 입회를 허락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번에 ‘재생의 성역’에서 거행될 수행 과정도 예약할 수 있었다.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돼서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수행 과정 당일, 전철을 갈아타고 나가노현으로 향했다. 교단 부지는 자연에 둘러싸인 드넓은 평지로, 중앙에 새하얀 건축물이 서 있었다. 이것이 소문으로 듣던 ‘재생의 성역(이제부터 ‘성역’으로 통일)’이다. 종교 시설이라기보다는 현대 예술이라고 해야 딱 와닿을 것처럼 특이하게 생겼다. 부지 내부에 있는 신자 수십 명은 모두 성역을 향해 줄줄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성역에서 튀어나온 좁고 기다란 터널로 들어가서 잠시 걷자 집회장이 나왔다. 집회장에는 수많은 접의자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내 기준으로 왼쪽에는 반원형 무대가 보였고, 오른쪽에는 새빨간 원통 모양 오브제가 있었다. 신자들은 이 거대한 오브제 앞에서 한동안 고개를 깊이 숙인 후 접의자에 앉았다. 분명 교단의 상징물이리라. 30분쯤 지나자 접의자 자리가 꽉 찼다. 자리에 앉지 못해 ‘입석’ 상태인 신자도 많았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반반 정도일까. 부부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령층은 삼사십 대가 제일 많았다. 다들 한 마디도 없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아무도 없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처럼 기묘한 광경은 지금까지 잠입 취재를 하면서 여러 번 보았다. 교주가 등장하기를 의심 없이 기다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컬트 교단 신자의 전형적인 태도다. 다만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봐 왔던 컬트 교단 신자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컬트 교단에서는 ‘제의(祭衣)’라고 부르는 복장으로 통일하고 수행에 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기 모인 신자들은 복장이 각양각색이었다. 분명 사복이리라. 더구나(패션 감각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비싸 보이는 명품 옷을 입었다. 자세히 보니 시계와 목걸이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재생회’는 신자에게 수백만 엔에서 수천만 엔에 이르는 고가의 상품을 구입하라고 요구한다.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걸까. 잠시 후, 무대에 누군가 나타났다. 교주 미도 히카리는 아니다.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불쾌한 듯 주름이 잡힌 미간, 쑥 들어간 눈, 그리고 특징적인 매부리코.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주부 지방에서 손꼽히는 건축 회사 ‘히쿠라 하우스’의 사장 히쿠라 마사히코였다. 사전에 소문은 들었다. 히쿠라 하우스의 사장은 컬트 교단 ‘재생회’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거액의 자금을 원조한다……. 설마 그 소문이 진짜였을 줄이야. 히쿠라 씨는 무대 한가운데에 서서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다음은 몰래 숨겨서 반입한 녹음기로 녹음한 음성을 녹취한 것이다. “이미 자각하고 계실 겁니다. 본인이 안고 있는 무시무시한 죄를. 그리고 그 죄를 여러분의 가엾은 아이가 물려받았습니다. 부모의 죄를 받아 태어난 아이. 죄를 짊어진 아이. 그 부정함이 여러 가지 불행을 불러들여 여러분을 지옥의 늪에 가라앉힐 겁니다. 안타깝게도 부정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석할 수는 있어요. 거듭 수행함으로써 정화할 수 있는 겁니다. 일단은 여러분부터 이 성역에서 부정함을 씻어 냅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지금보다 좀 더 정화된 몸으로 집에 돌아가서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수행을 지도해 주십시오.” 한 기업을 통솔하는 수장답게 목소리와 말투에 위엄이 있었다. 내용 자체는 극히 정석적이었다.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일단 ‘죄’니 ‘부정함’이니 ‘불행’이니 하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공포심을 자극한 후, 마지막에 ‘거듭 수행함으로써 정화할 수 있다’라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이 교단에 입회하면 구원받는다’라는 뜻이다. 너무나 초보적인 연설이었다. 그래도 신자들은 히쿠라 씨의 이야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말을 곱씹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재생회’는 신자를 세뇌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신자들은 분명 무슨 방법으로 세뇌당했다. 히쿠라 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어디선가 교회원(신자의 수행을 돕는 도우미) 몇 명이 나타나 우리를 자리에서 일으키고 일렬로 세웠다. 아무래도 이제부터 교주 미도 히카리에게 참예(신에게 나아가 뵙는 것)하러 가는 모양이다. ‘성모님’이라 불리는 살아 있는 신 미도 히카리……. 대체 어떤 인물일까. 신자들의 행렬은 새빨간 원통 모양 오브제로 이어졌다. 성모님은 오브제 안에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오브제가 아니라 ‘신전’인 셈이다. 교회원이 신전 문을 열자 신자들은 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안으로 들어갔다. 한 조당 10분 넘게 걸리므로 진행은 느리다. 신전에서 나온 신자들은 모두 기쁨이 충만한 표정이다. 혹시 이 안에 세뇌의 비밀이 있는 것 아닐까. 한 시간쯤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일단 신전의 구조를 설명하겠다. 내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벽이 둘러쳐져 있고, 신전 중심부에 성모님이 앉아 있다. 우리 다섯 명은 벽에 설치된 창문으로 성모님을 바라보며 중심부를 향해 빙글빙글 걸어갔다. 통로는 캄캄했지만, 성모님 바로 위에 작은 전구가 달려 있어서 성모님의 모습은 어렴풋이 보인다. 첫 번째 창문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중심부로 다가가면서 성모님의 모습이 좀 더 확실히 눈에 들어오자 나는 확신했다. 성모님은 신체 장애인이다. 왼팔과 오른 다리가 없다. ☆외팔과 외다리인 성모님 성모님은 쉰 살이 넘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는 데다 길고 까만 머리에는 윤기가 흘렀고 피부도 탄력 있고 매끄러워서 열 살은 젊어 보였다. 허벅다리부터 아래쪽이 없는 오른 다리 대신에 길쭉하니 시원스럽게 뻗은 왼 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간소한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흰색 비단 한 장뿐이다. 거의 반라라고 해도 될 정도다. ‘신성하다’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중심부에 도착하자 나를 제외한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모님 앞에 공손히 꿇어앉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했다. 성모님은 나를 보고 “처음 오신 분이로군요. 마음 편히 수행하고 가세요.”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도, 그대도, 그대도, 그대도,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 그대도 죄에 신음하고 계시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곧 좋아질 거예요.
일찍이 나가노현 서부 야케다케산 기슭에 거대한 건축물이 있었다. 이름은 ‘재생의 성역’. ……컬트 교단 ‘재생회’의 종교 시설로 사용됐다고 한다. 교단은 이미 해산했고 시설도 철거됐으므로, 그 실체를 자세히 알아보려면 과거의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1994년 8월에 발매된 한 월간지에 실린 기사로,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재생의 성역’ 잠입 리포트다. 기사는 원래 ‘전편’과 ‘후편’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지만, 전편이 공개된 후 어느 기업에서 클레임이 들어와서 다음 호에 실릴 후편은 다른 기사로 대체돼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 보여 드릴 수 있는 내용은 ‘전편’뿐이다. 덧붙여 본문 속 삽화는 잡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컬트 교단의 내부를 철저히 파헤친다 ‘재생회’ 시설 잠입 리포트 전편〉 ☆독특한 운영 방침? ‘재생회’는 나가노현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컬트 교단이다. 그들의 교주는 살아 있는 신 미도 히카리(통칭: 성모님)다. ‘살아 있는 신’이란 살아 있는 인간을 신으로 숭배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요컨대 “내가 바로 신이니 나를 숭배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교주 밑에 신자가 모여들어서 생긴 교단이라는 뜻이다. 그런 컬트 교단 자체는 드물지 않지만, ‘재생회’에는 몇 가지 별난 특징이 있다. ① ‘어떤 사정’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단 지금까지 수많은 컬트 교단에 잠입해 취재하면서 만난 신자들은 실로 다양했다. 처자식을 가진 부자가 있는가 하면, 홀몸인 가난뱅이도 있었다. 도쿄 대학교 졸업생이 있는가 하면, 중졸도 있었다. 성장 환경, 연령, 성별, 직업, 취미……. 전부 제각각이라 ‘이런 유형의 사람이 종교에 잘 빠진다’라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재생회’ 신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어떤 사정’을 끌어안은 사람만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신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사정’이란 대체 무엇일까. ② 세뇌하지 않는 종교 컬트 교단은 신비한 초능력(그 정체는 대부분 단순한 마술이지만)을 보여 주거나, 폭력 또는 불법 약물을 사용해 신자를 세뇌할 때가 많다. 하지만 ‘재생회’는 그런 방법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도 신자의 신앙심을 얻어 내 고가의 상품을 판매한다고 한다. 상품이라고 해도 항아리나 수정 구슬 같은 쩨쩨한 물건이 아니다. 수백만 엔, 때로는 수천만 엔을 호가하는 초고가 상품을 팔아넘긴다. 교단은 전화 권유와 입소문만으로 발족한 지 6년 차에 수백 명의 신자를 모았다고 한다. 인원수와 금액을 곱하면 그들의 벌이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무서울(부러울) 따름이다. ③ 특이한 수행 방법 나가노현 서부에 ‘재생회’가 소유한 시설이 있다. 이름하여 ‘재생의 성역’. 한 달에 네 번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신자들이 ‘재생의 성역’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는데, 그 수행 방법이 참으로 특이하다고 한다. 한 달에 몇 번밖에 하지 않는 ‘특이한 수행’. ……바로 거기에 신자를 사로잡아 고가의 물건을 사게 하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잠입의 프로라고 자부하는 필자가 ‘재생의 성역’에 직접 숨어들어 취재하기로 했다. 당연히 시설에 잠입하려면 교단에 입회해야 한다. 매번 이것이 걸림돌이다. 컬트 교단은 대부분 내부 정보가 세상에 새어 나가는 걸 싫어하므로, 입회 희망자를 철저하게 조사해 ‘잠입 취재가 목적인 기자가 아닌지’ 판가름한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필자도 그들 특유의 후각에 발각돼 거절당할 때가 많다. 그런데 다른 컬트 교단에 비해 ‘재생회’는 문턱이 상당히 낮았다. 전화로 이름, 나이, 주소를 말한 후 ‘어떤 질문’에 대답하고(질문 내용은 교단의 정체와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다음 호에 실릴 후편에서 밝히겠다) 마지막으로 교단에 신앙을 맹세하자 바로 입회를 허락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번에 ‘재생의 성역’에서 거행될 수행 과정도 예약할 수 있었다.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돼서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수행 과정 당일, 전철을 갈아타고 나가노현으로 향했다. 교단 부지는 자연에 둘러싸인 드넓은 평지로, 중앙에 새하얀 건축물이 서 있었다. 이것이 소문으로 듣던 ‘재생의 성역(이제부터 ‘성역’으로 통일)’이다. 종교 시설이라기보다는 현대 예술이라고 해야 딱 와닿을 것처럼 특이하게 생겼다. 부지 내부에 있는 신자 수십 명은 모두 성역을 향해 줄줄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성역에서 튀어나온 좁고 기다란 터널로 들어가서 잠시 걷자 집회장이 나왔다. 집회장에는 수많은 접의자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내 기준으로 왼쪽에는 반원형 무대가 보였고, 오른쪽에는 새빨간 원통 모양 오브제가 있었다. 신자들은 이 거대한 오브제 앞에서 한동안 고개를 깊이 숙인 후 접의자에 앉았다. 분명 교단의 상징물이리라. 30분쯤 지나자 접의자 자리가 꽉 찼다. 자리에 앉지 못해 ‘입석’ 상태인 신자도 많았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반반 정도일까. 부부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령층은 삼사십 대가 제일 많았다. 다들 한 마디도 없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아무도 없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처럼 기묘한 광경은 지금까지 잠입 취재를 하면서 여러 번 보았다. 교주가 등장하기를 의심 없이 기다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컬트 교단 신자의 전형적인 태도다. 다만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봐 왔던 컬트 교단 신자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컬트 교단에서는 ‘제의(祭衣)’라고 부르는 복장으로 통일하고 수행에 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기 모인 신자들은 복장이 각양각색이었다. 분명 사복이리라. 더구나(패션 감각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비싸 보이는 명품 옷을 입었다. 자세히 보니 시계와 목걸이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재생회’는 신자에게 수백만 엔에서 수천만 엔에 이르는 고가의 상품을 구입하라고 요구한다.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걸까. 잠시 후, 무대에 누군가 나타났다. 교주 미도 히카리는 아니다.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불쾌한 듯 주름이 잡힌 미간, 쑥 들어간 눈, 그리고 특징적인 매부리코.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주부 지방에서 손꼽히는 건축 회사 ‘히쿠라 하우스’의 사장 히쿠라 마사히코였다. 사전에 소문은 들었다. 히쿠라 하우스의 사장은 컬트 교단 ‘재생회’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거액의 자금을 원조한다……. 설마 그 소문이 진짜였을 줄이야. 히쿠라 씨는 무대 한가운데에 서서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다음은 몰래 숨겨서 반입한 녹음기로 녹음한 음성을 녹취한 것이다. “이미 자각하고 계실 겁니다. 본인이 안고 있는 무시무시한 죄를. 그리고 그 죄를 여러분의 가엾은 아이가 물려받았습니다. 부모의 죄를 받아 태어난 아이. 죄를 짊어진 아이. 그 부정함이 여러 가지 불행을 불러들여 여러분을 지옥의 늪에 가라앉힐 겁니다. 안타깝게도 부정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석할 수는 있어요. 거듭 수행함으로써 정화할 수 있는 겁니다. 일단은 여러분부터 이 성역에서 부정함을 씻어 냅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지금보다 좀 더 정화된 몸으로 집에 돌아가서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수행을 지도해 주십시오.” 한 기업을 통솔하는 수장답게 목소리와 말투에 위엄이 있었다. 내용 자체는 극히 정석적이었다.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일단 ‘죄’니 ‘부정함’이니 ‘불행’이니 하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공포심을 자극한 후, 마지막에 ‘거듭 수행함으로써 정화할 수 있다’라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이 교단에 입회하면 구원받는다’라는 뜻이다. 너무나 초보적인 연설이었다. 그래도 신자들은 히쿠라 씨의 이야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말을 곱씹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재생회’는 신자를 세뇌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신자들은 분명 무슨 방법으로 세뇌당했다. 히쿠라 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어디선가 교회원(신자의 수행을 돕는 도우미) 몇 명이 나타나 우리를 자리에서 일으키고 일렬로 세웠다. 아무래도 이제부터 교주 미도 히카리에게 참예(신에게 나아가 뵙는 것)하러 가는 모양이다. ‘성모님’이라 불리는 살아 있는 신 미도 히카리……. 대체 어떤 인물일까. 신자들의 행렬은 새빨간 원통 모양 오브제로 이어졌다. 성모님은 오브제 안에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오브제가 아니라 ‘신전’인 셈이다. 교회원이 신전 문을 열자 신자들은 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안으로 들어갔다. 한 조당 10분 넘게 걸리므로 진행은 느리다. 신전에서 나온 신자들은 모두 기쁨이 충만한 표정이다. 혹시 이 안에 세뇌의 비밀이 있는 것 아닐까. 한 시간쯤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일단 신전의 구조를 설명하겠다. 내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벽이 둘러쳐져 있고, 신전 중심부에 성모님이 앉아 있다. 우리 다섯 명은 벽에 설치된 창문으로 성모님을 바라보며 중심부를 향해 빙글빙글 걸어갔다. 통로는 캄캄했지만, 성모님 바로 위에 작은 전구가 달려 있어서 성모님의 모습은 어렴풋이 보인다. 첫 번째 창문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중심부로 다가가면서 성모님의 모습이 좀 더 확실히 눈에 들어오자 나는 확신했다. 성모님은 신체 장애인이다. 왼팔과 오른 다리가 없다. ☆외팔과 외다리인 성모님 성모님은 쉰 살이 넘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는 데다 길고 까만 머리에는 윤기가 흘렀고 피부도 탄력 있고 매끄러워서 열 살은 젊어 보였다. 허벅다리부터 아래쪽이 없는 오른 다리 대신에 길쭉하니 시원스럽게 뻗은 왼 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간소한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흰색 비단 한 장뿐이다. 거의 반라라고 해도 될 정도다. ‘신성하다’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중심부에 도착하자 나를 제외한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모님 앞에 공손히 꿇어앉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했다. 성모님은 나를 보고 “처음 오신 분이로군요. 마음 편히 수행하고 가세요.”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도, 그대도, 그대도, 그대도,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 그대도 죄에 신음하고 계시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곧 좋아질 거예요.
제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에는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하지만 오래전에 철거됐고 저도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떠올릴 여유가 없었죠……. 그렇다기보다 잊어버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점점 그 집과 어머니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어린 시절에 제가 살았던 집은 도야마현 다카오카시의 주택가에 있는 1층짜리 단독주택이었어요.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만 이상하다고…… 어렸을 적부터 의문을 느꼈죠. 이 복도, 필요 없어 보이지 않으세요? 갈 곳이 없잖아요. 이 복도로 들어가도 아무 데도 못 가요. 이 복도가 없다면 저랑 부모님 방을 더 넓힐 수 있었겠죠. 뭣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공간을 만들었는지 늘 궁금했어요. 옛날에 아버지에게 한번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이 복도는 뭣 때문에 있는 거냐고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왠지 안절부절못하면서 억지로 이야기를 돌리더라고요. 저는 질문을 무시당한 게 억울해서 떼쓰듯이 이 복도는 뭐냐고 계속 물어봤고요. 아버지는 딸한테 껌뻑 죽는 사람이라 평소 같으면 그쯤에서 알려 줬을 텐데, 그때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해 줬어요. 어머니에게는 안 물어봤어요. 못 물어봤다……고 해야 맞겠네요. 그런 걸 마음 편히 물어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어머니는 이웃 사람이나 아버지에게는 평범하게 밝은 사람이었지만, 저한테는 늘 매몰차게 대했어요. 칭찬해 준 적은 거의 없었고 사소한 일로 호통을 쳤죠. 그뿐만이라면 그냥 ‘엄격한 어머니’라고 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서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저를 보기도 해서……. 두려워한다……고 할까요? 피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어쨌거나 어머니가 저를 대하는 태도는 심상치 않았죠. 모르겠어요. 천지를 분간할 무렵부터 쭉 그랬는지라 당연하게 ‘엄마는 날 싫어하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였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았던 것도 같아요. 어머니는 엄한 한편으로 저를 몹시 과보호했거든요. 제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서 어릴 적에 몸이 허약했던 탓인지 “기분은 어떠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하고 매일같이 물어봤죠. 그리고 큰길에는 나가면 안 된다고도 했어요. 그 집 남쪽에 큰길이 있었어요. 북쪽, 동쪽, 서쪽에는 좁은 골목을 끼고서 가정집이 있었고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큰길에는 나가면 안 돼. 밖을 다닐 때는 골목으로 다니렴.” 하고 얘기하셨죠. 확실히 큰길은 인도가 좁아서 위험하다면 위험했지만, 촌 동네라 차가 그렇게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았는데 걱정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었어요. 뭐, 어머니 말을 안 들으면 혼나니까 시킨 대로 했지만요. 매몰차게 대하는 한편, 필요 이상으로 과보호한다……. 이런 태도가 무슨 의미인지 짚이는 점이 있었다. 네기시 씨의 어머니는 딸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 아닐까. 세상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부모’가 존재한다. 그들은 진지하다. 너무 진지한 나머지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과도한 자의식에 빠져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아이에게 전달돼 서로 소통이 어려워진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초조함과 짜증을 느낀 부모는 아이를 피하게 된다. ‘부모’라는 역할에서 비롯된 압박감이 ‘과보호’와 ‘거절’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 아이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복도는 부모님 방과 네기시 씨 방 사이에 있다. 관점을 바꾸면 복도 때문에 두 방이 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이 복도의 역할 아닐까. 보호하기 위해 자기 근처에 있었으면 하지만, 동시에 거리도 두고 싶다. 어머니의 그런 모순된 심리가 만들어 낸 ‘벽’ 같은 것 아닐까. 나는 네기시 씨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나자 네기시 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네기시 실은 저도 예전에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는 저를 멀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했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상해요. 이 집이 완공된 건 1990년 9월……. 제가 태어나고 반년 후거든요. 아무리 빨라도 설계부터 완공까지 반년 만에 끝날 리는 없잖아요? 즉, 이 집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설계됐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때부터 저를 멀리하고 싶었을 리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네기시 씨를 위해 만든 집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 복도가 네기시 씨의 출생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어요. 현재로서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만……. 네기시 씨는 부모님과 어떻게 사별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겨울이었어요. 가족끼리 밥을 먹으러 갔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그 자리에 쓰러지셨죠. 급히 119를 불렀지만 연말이라 구급차가 다 출동하고 없었는지, 한참 후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검사 결과는 뇌경색이었다. 치료가 늦은 탓에 온몸에 후유증이 남은 어머니는 병석에 누웠다.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간병하는 짬짬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다. 네기시 씨도 집안일을 최대한 도왔지만,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힘들게 일하느라 아버지는 점점 수척해졌다. 그런 생활이 2년간 이어졌다. 네기시 씨가 열한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뒤따르듯 아버지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간병을 하면서 보낸 2년의 세월이 너무 힘들었던 데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고통을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네기시 씨는 말했다. 홀로 남은 저를 먼 친척이 거두어 주었죠. 살던 집은 내놨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몇 년 후에 맨션을 건축할 때 철거됐다고 들었고요. 네기시 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컵 받침에 달그락 내려놓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의외의 물건이 두 개 나왔어요. 하나는 돈이요. 어머니 서랍에 두툼한 봉투가 있길래 뭐가 들었나 꺼내 보니, 만 엔짜리가 예순여덟 장이나 됐어요. 비상금이었던 걸까요. 어머니는 건강했던 시절에 도시락집에서 일했으니까 절대로 못 모을 액수는 아니지만, 돈 욕심은 없는 분인 줄 알았기에 좀 의외였죠. 그래도 돈뿐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본식 방의 수납실에 신문지로 둘둘 만 목각 인형이 들어 있더라고요.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에 누구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한 건 그 인형…… 팔과 다리가 하나씩 부러져 있었어요. 기분 나빠서 버렸는데요. 그 인형이 뭐였는지, 누가 뭣 때문에 팔다리를 부러뜨렸는지…… 지금도 모르겠네요. 수수께끼의 복도, 어머니의 태도, 68만 엔, 팔다리가 부러진 인형. 전혀 연결되지 않은 정보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너무 궁금한 나머지 건축 관련 서적을 읽거나, 떠오른 생각을 노트에 정리하며 오랜 세월 고민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해답에 다다랐어요. 하지만 아무 근거도 없고, 무엇보다…… 만약 그 ‘해답’이 맞는다면 제게는 몹시 무섭고 슬픈 일이라……. 결국 모르는 척 잊어버리려고 했죠. ……하지만 안 되더라고요. 몇 년이 지나도, 어른이 돼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툭하면 그 ‘해답’이 떠올라서 두려워져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만 먹었는데도 이렇게 긴장되다니……. 이제 그만, 해방되고 싶어요. ‘갈 곳 없는 복도’는 왜 만들었을까. 저는 처음에 그 이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애당초 잘못된 관점에서 바라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건 ‘갈 곳 없는 복도’가 아니라 ‘갈 곳 없어진 복도’ 아니겠느냐는 거죠. 네기시 씨는 볼펜을 꺼내 평면도에 기호를 그려 넣었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원래 여기에 문을 달려던 것 아니겠느냐고요. 하지만 정원으로 나가는 문은 거실에도 있고, 현관에서도 정원으로 갈 수 있잖아요. 굳이 여기에 출입구를 만들 필요는 없어요. 더구나 복도까지 만들어 놓고서 문을 다는 것만 취소하다니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바꿔 봤어요. 계획상으로는 방을 하나 더 만들 예정이었다. 이 복도는 그 방으로 가기 위한 ‘통로’였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갑자기 계획이 변경돼서 방은 평면도에서 지워졌다. 그 결과 통로만 남은 것 아닐까 싶더라고요. 분명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예를 들면…… 가족이 한 명 줄었다든가…….’누군가’가 이 방에서 지낼 예정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친척……. 누군지는 모르지만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그 사람은 없어졌다. 보통은 안 그러겠죠. 맞아요. 보통은 그럴 리가 없어요. 따라서 ‘그 사람’은 부모님에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였던 거예요. 그건 대체 누굴까 생각하다가 이상한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이 방, 어쩐지 제 방과 비슷하죠? 크기가 거의 똑같고, 정원에 면해 있다는 점도 동일해요. 어쩐지…… 쌍둥이처럼요.
제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에는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하지만 오래전에 철거됐고 저도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떠올릴 여유가 없었죠……. 그렇다기보다 잊어버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점점 그 집과 어머니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어린 시절에 제가 살았던 집은 도야마현 다카오카시의 주택가에 있는 1층짜리 단독주택이었어요.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만 이상하다고…… 어렸을 적부터 의문을 느꼈죠. 이 복도, 필요 없어 보이지 않으세요? 갈 곳이 없잖아요. 이 복도로 들어가도 아무 데도 못 가요. 이 복도가 없다면 저랑 부모님 방을 더 넓힐 수 있었겠죠. 뭣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공간을 만들었는지 늘 궁금했어요. 옛날에 아버지에게 한번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이 복도는 뭣 때문에 있는 거냐고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왠지 안절부절못하면서 억지로 이야기를 돌리더라고요. 저는 질문을 무시당한 게 억울해서 떼쓰듯이 이 복도는 뭐냐고 계속 물어봤고요. 아버지는 딸한테 껌뻑 죽는 사람이라 평소 같으면 그쯤에서 알려 줬을 텐데, 그때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해 줬어요. 어머니에게는 안 물어봤어요. 못 물어봤다……고 해야 맞겠네요. 그런 걸 마음 편히 물어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어머니는 이웃 사람이나 아버지에게는 평범하게 밝은 사람이었지만, 저한테는 늘 매몰차게 대했어요. 칭찬해 준 적은 거의 없었고 사소한 일로 호통을 쳤죠. 그뿐만이라면 그냥 ‘엄격한 어머니’라고 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서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저를 보기도 해서……. 두려워한다……고 할까요? 피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어쨌거나 어머니가 저를 대하는 태도는 심상치 않았죠. 모르겠어요. 천지를 분간할 무렵부터 쭉 그랬는지라 당연하게 ‘엄마는 날 싫어하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였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았던 것도 같아요. 어머니는 엄한 한편으로 저를 몹시 과보호했거든요. 제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서 어릴 적에 몸이 허약했던 탓인지 “기분은 어떠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하고 매일같이 물어봤죠. 그리고 큰길에는 나가면 안 된다고도 했어요. 그 집 남쪽에 큰길이 있었어요. 북쪽, 동쪽, 서쪽에는 좁은 골목을 끼고서 가정집이 있었고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큰길에는 나가면 안 돼. 밖을 다닐 때는 골목으로 다니렴.” 하고 얘기하셨죠. 확실히 큰길은 인도가 좁아서 위험하다면 위험했지만, 촌 동네라 차가 그렇게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았는데 걱정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었어요. 뭐, 어머니 말을 안 들으면 혼나니까 시킨 대로 했지만요. 매몰차게 대하는 한편, 필요 이상으로 과보호한다……. 이런 태도가 무슨 의미인지 짚이는 점이 있었다. 네기시 씨의 어머니는 딸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 아닐까. 세상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부모’가 존재한다. 그들은 진지하다. 너무 진지한 나머지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과도한 자의식에 빠져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아이에게 전달돼 서로 소통이 어려워진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초조함과 짜증을 느낀 부모는 아이를 피하게 된다. ‘부모’라는 역할에서 비롯된 압박감이 ‘과보호’와 ‘거절’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 아이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복도는 부모님 방과 네기시 씨 방 사이에 있다. 관점을 바꾸면 복도 때문에 두 방이 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이 복도의 역할 아닐까. 보호하기 위해 자기 근처에 있었으면 하지만, 동시에 거리도 두고 싶다. 어머니의 그런 모순된 심리가 만들어 낸 ‘벽’ 같은 것 아닐까. 나는 네기시 씨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나자 네기시 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네기시 실은 저도 예전에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는 저를 멀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했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상해요. 이 집이 완공된 건 1990년 9월……. 제가 태어나고 반년 후거든요. 아무리 빨라도 설계부터 완공까지 반년 만에 끝날 리는 없잖아요? 즉, 이 집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설계됐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때부터 저를 멀리하고 싶었을 리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네기시 씨를 위해 만든 집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 복도가 네기시 씨의 출생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어요. 현재로서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만……. 네기시 씨는 부모님과 어떻게 사별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겨울이었어요. 가족끼리 밥을 먹으러 갔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그 자리에 쓰러지셨죠. 급히 119를 불렀지만 연말이라 구급차가 다 출동하고 없었는지, 한참 후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검사 결과는 뇌경색이었다. 치료가 늦은 탓에 온몸에 후유증이 남은 어머니는 병석에 누웠다.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간병하는 짬짬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다. 네기시 씨도 집안일을 최대한 도왔지만,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힘들게 일하느라 아버지는 점점 수척해졌다. 그런 생활이 2년간 이어졌다. 네기시 씨가 열한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뒤따르듯 아버지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간병을 하면서 보낸 2년의 세월이 너무 힘들었던 데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고통을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네기시 씨는 말했다. 홀로 남은 저를 먼 친척이 거두어 주었죠. 살던 집은 내놨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몇 년 후에 맨션을 건축할 때 철거됐다고 들었고요. 네기시 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컵 받침에 달그락 내려놓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의외의 물건이 두 개 나왔어요. 하나는 돈이요. 어머니 서랍에 두툼한 봉투가 있길래 뭐가 들었나 꺼내 보니, 만 엔짜리가 예순여덟 장이나 됐어요. 비상금이었던 걸까요. 어머니는 건강했던 시절에 도시락집에서 일했으니까 절대로 못 모을 액수는 아니지만, 돈 욕심은 없는 분인 줄 알았기에 좀 의외였죠. 그래도 돈뿐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본식 방의 수납실에 신문지로 둘둘 만 목각 인형이 들어 있더라고요.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에 누구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한 건 그 인형…… 팔과 다리가 하나씩 부러져 있었어요. 기분 나빠서 버렸는데요. 그 인형이 뭐였는지, 누가 뭣 때문에 팔다리를 부러뜨렸는지…… 지금도 모르겠네요. 수수께끼의 복도, 어머니의 태도, 68만 엔, 팔다리가 부러진 인형. 전혀 연결되지 않은 정보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너무 궁금한 나머지 건축 관련 서적을 읽거나, 떠오른 생각을 노트에 정리하며 오랜 세월 고민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해답에 다다랐어요. 하지만 아무 근거도 없고, 무엇보다…… 만약 그 ‘해답’이 맞는다면 제게는 몹시 무섭고 슬픈 일이라……. 결국 모르는 척 잊어버리려고 했죠. ……하지만 안 되더라고요. 몇 년이 지나도, 어른이 돼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툭하면 그 ‘해답’이 떠올라서 두려워져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만 먹었는데도 이렇게 긴장되다니……. 이제 그만, 해방되고 싶어요. ‘갈 곳 없는 복도’는 왜 만들었을까. 저는 처음에 그 이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애당초 잘못된 관점에서 바라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건 ‘갈 곳 없는 복도’가 아니라 ‘갈 곳 없어진 복도’ 아니겠느냐는 거죠. 네기시 씨는 볼펜을 꺼내 평면도에 기호를 그려 넣었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원래 여기에 문을 달려던 것 아니겠느냐고요. 하지만 정원으로 나가는 문은 거실에도 있고, 현관에서도 정원으로 갈 수 있잖아요. 굳이 여기에 출입구를 만들 필요는 없어요. 더구나 복도까지 만들어 놓고서 문을 다는 것만 취소하다니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바꿔 봤어요. 계획상으로는 방을 하나 더 만들 예정이었다. 이 복도는 그 방으로 가기 위한 ‘통로’였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갑자기 계획이 변경돼서 방은 평면도에서 지워졌다. 그 결과 통로만 남은 것 아닐까 싶더라고요. 분명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예를 들면…… 가족이 한 명 줄었다든가…….’누군가’가 이 방에서 지낼 예정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친척……. 누군지는 모르지만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그 사람은 없어졌다. 보통은 안 그러겠죠. 맞아요. 보통은 그럴 리가 없어요. 따라서 ‘그 사람’은 부모님에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였던 거예요. 그건 대체 누굴까 생각하다가 이상한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이 방, 어쩐지 제 방과 비슷하죠? 크기가 거의 똑같고, 정원에 면해 있다는 점도 동일해요. 어쩐지…… 쌍둥이처럼요.
11월 24일 오늘은 계속 집에 있었다. 엄마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아서 심심하다. 배고픈 걸 참을 수 없어서 부엌에 있는 빵을 하나 먹었다. 11월 25일 어젯밤에 왜 맘대로 빵을 먹었느냐고 엄마가 혼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백 번 말했다. 엄마는 저녁까지 자다가 일어나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울 마음은 없었는데 눈물이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11월 26일 배고프다고 시끄럽게 말했더니 엄마가 화나서 “조용히 해.” 하고 소리치며 내 코를 꽉 잡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입으로 숨 쉬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 “꼼수 부리지 마.” 하고 엄마가 혼내서 꼼수를 부린 것이 부끄러웠다. 꿇어앉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11월 27일 저녁에 아저씨가 와서 엄마와 함께 아저씨네 집에 갔다. 처음 가 보는 거라서 긴장됐다. 차를 타자 금방 도착했다. 아저씨네 집은 굉장했다. 연립주택에 있는 우리 집보다 크고, 문 왼쪽에는 커다란 화단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한가운데에 복도가 있고, 문도 많이 있었다. 제일 가까운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텔레비전과 테이블이 있었다. 창문으로 화단과 집 현관문이 보였다. 반대쪽 창문으로는 붕붕 달리는 차가 보여서 멋있었다. 그 방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오므라이스였는데 맛있었다. 배부르게 먹어도 엄마가 화내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복도로 나가서 옆방으로 갔다. “여기가 나루키 방이야.” 하고 아저씨가 말했다. 방에는 침대가 있었다. 침대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기뻤다. 그리고 달려가는 차들이 창문으로 보여서 즐거웠다. 1월 28일 아침에 일어나 아저씨랑 엄마와 함께 밥을 먹었다. 폭신폭신한 달걀 요리와 구운 햄이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복도로 나가서 밥 먹는 방의 옆방으로 갔다. 커다란 창문으로 화단이 보였다. 방에 자전거 같은 게 있었다. 아저씨는 “실내 사이클이야.”라고 했다. 타 보니까 재미있었다. 그 방에 다른 문이 있었다. 열어 보니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그 방도 창문으로 화단이 보였고, 다른 창문으로는 강이 보였다. 저녁에 아저씨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와 헤어질 때 슬펐다. 밤에 엄마가, 내가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화내면서 숨을 못 쉬도록 코를 잡았다. 입으로 숨 쉬는 건 꼼수니까 열심히 입을 다물었다. (중략) 2월 24일 엄마가 낮에 들어와서 잠들었다. 이불을 덮어 주자 “고마워.” 하고 꼭 안아 주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같이 잤다. 저녁에 엄마랑 내 밥을 만들려고 식빵에 잼을 발라서 토스트기에 넣었더니 까맣게 탔다. 엄마 몰래 쓰레기로 버리려다가 들켜서 혼났다. “꼼수는 안 돼.”라는 말에 또 꼼수를 부린 것이 창피했다. 2월 25일 엄마가 “내일은 아저씨네 집에 가는 날이야.”라고 해서 기대됐다. 하지만 아저씨네 집에서 너무 재미있게 지내면 돌아와서 엄마한테 혼나니까 너무 재미있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2월 26일 엄마랑 아저씨네 집에 갔다. 화단을 보자 반가웠다. 셋이서 식당에 가서 라면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오므라이스를 또 먹고 싶었다. 아저씨와 같이 목욕한 후, 아저씨랑 엄마가 싸워서 엄마가 울었다. 아저씨는 내가 말라서 가엾다고 했다. 화해한 후 아저씨가 “이제부터는 양육비를 줄게.” 하고 말했다. 엄마는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2월 27일 아침밥으로 먹은 콘 수프와 달걀프라이가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또 타고 싶어서 밥 먹는 방의 옆방에 가서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탔다. 막 밥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조금 아팠다. 자전거를 탄 다음 그 방에 있는 다른 문을 열자 전에 있었던 방이 없고, 강이 쏴아쏴아 흘렀다. 이상했다. 저녁에 아저씨 차로 집에 돌아왔다. 헤어질 때 슬퍼서 울 뻔했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제대로 말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중략) 3월 3일 부엌에 빵이 하나도 없어서 오늘도 밥을 못 먹었다. 배가 고프다가 나중에는 아프길래, 연필을 핥고 씹어서 먹었다. 배 아픈 것이 조금 나아졌다. 3월 4일 아저씨한테 전화가 와서 “엄마 바꿔 줘.” 하고 시키길래 엄마를 바꿔 줬다. 엄마는 전화로 아저씨와 말싸움을 했다. 전화를 끊은 후에 엄마가 “이제 아저씨를 만나러 안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하고 말해서 슬펐다. 3월 5일 엄마가 나간 후에 아저씨가 왔다. “아저씨랑 같이 가자.”라고 하길래 아저씨네 집에 갔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아저씨가 괜찮다고 했고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준대서 가기로 했다. 아저씨네 집에서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그다음에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 아저씨는 “여기서 살아도 돼.” 하고 말했다. 학교에도 보내 주겠다고 했다. 엄마도 같이 산다면 아저씨네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가 복도 저 멀리 있는 방에 데려갔다. 작은 방이었는데 갈색 인형이 있어서 무서웠다. 아저씨는 “여기는 집의 심장이야.” 하고 말했다. “그래서 문을 잠그면 안 돼.”라고도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3월 6일 아저씨와 점심을 먹은 후 집 앞에 차가 섰다. 엄마랑 금색 머리 남자가 내렸다. 엄마와 남자는 아저씨와 싸웠다. 나는 엄마에게 안겨서 남자 차에 탔다. 아저씨가 쫓아왔지만, 차가 빨리 달려서 아저씨는 금방 보이지 않게 됐다. 차는 우리 집으로 가지 않고 남자의 집이 있는 연립주택으로 갔다. 엄마는 “이제부터 우리 셋이서 여기 살 거야.”라고 했다. 아저씨를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월 7일 남자의 이름은 에이지 씨라는 걸 배웠다. 에이지 씨가 밥을 줬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서 뱉었다. 엄마는 내게 화를 내고 에이지 씨에게 사과했다. 엄마가 에이지 씨한테 혼나는 게 싫어서 참고 먹었더니, 기분이 안 좋아져서 토했다. 그래서 엄마가 에이지 씨에게 혼났다. 내가 알아서 “죄송합니다.”를 백 번 말했다. 3월 8일 배가 아파서 설사할 것 같았지만, 나 때문에 귀찮아지면 에이지 씨가 엄마한테 화내니까 참았다. (중략) 3월 16일 에이지 씨가 시켜서 나는 벽장에서 지내기로 했다. 엄마가 “미안해.” 하고 울어서 나도 울 뻔했지만 참았다. 엄마가 몰래 빵을 하나 주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었다. 3월 17일 벽장 안에 가만히 앉아 있자 엉덩이와 등이 아팠지만, 소리를 내면 에이지 씨가 엄마를 때리니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전에 봤던 재미있는 텔레비전 방송 같은 걸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참았다. 3월 18일 소리를 내서 에이지 씨에게 맞았다. 엄마가 울면서 그만하라고 하자 에이지 씨는 엄마도 때렸다. 3월 19일 에이지 씨의 고함 소리와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들리지 않도록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었다. (중략) 4월 12일 오늘도 밥을 못 먹었다. 배가 고프고 아팠다. 재미있는 일을 생각하며 배가 아픈 걸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아저씨네 집에 가서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다. 4월 13일 배가 아픈 건 나았지만, 배가 빵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침에서 쓴맛이 났다. 4월 14일 엄마가 물을 주었다. 물은 원래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오늘은 단맛이 났다. 4월 15일 일어날 수가 없어서 벽장 구석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이불을 깔고 자고 싶었다. 4월 16일 엄마가 주먹밥을 줬지만 씹어도 삼킬 수가 없었다. 4월 17일 눈이 뻑뻑해서 글씨를 제대로 못 쓰겠다. 4월 18일 누워 있어도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 든다. 4월 19일 온몸이 아프다. 4월 20일 눈이 잘 안 보인다. 4월 21일 물 먹고 싶다. (일기는 여기서 끊겼다.) 필자 주 1994년 5월 8일.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 위치한 연립주택의 한 방에서 미쓰하시 나루키(9)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추정됐다. 시신의 전신에 타박상이 남은 것으로 보건대, 나루키 군은 평소 학대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 나루키 군의 어머니 미쓰하시 사오리 용의자와 그녀의 남자친구인 나카무라 에이지 용의자는 보호 책임자 유기 치사죄로 기소돼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14년이 확정됐다. 나루키 군이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죽기 얼마 전까지 나루키 군이 썼던 일기의 내용이 《소년의 독백~미쓰하시 나루키의 마지막 수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챕터는 그 서적에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11월 24일 오늘은 계속 집에 있었다. 엄마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아서 심심하다. 배고픈 걸 참을 수 없어서 부엌에 있는 빵을 하나 먹었다. 11월 25일 어젯밤에 왜 맘대로 빵을 먹었느냐고 엄마가 혼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백 번 말했다. 엄마는 저녁까지 자다가 일어나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울 마음은 없었는데 눈물이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11월 26일 배고프다고 시끄럽게 말했더니 엄마가 화나서 “조용히 해.” 하고 소리치며 내 코를 꽉 잡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입으로 숨 쉬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 “꼼수 부리지 마.” 하고 엄마가 혼내서 꼼수를 부린 것이 부끄러웠다. 꿇어앉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11월 27일 저녁에 아저씨가 와서 엄마와 함께 아저씨네 집에 갔다. 처음 가 보는 거라서 긴장됐다. 차를 타자 금방 도착했다. 아저씨네 집은 굉장했다. 연립주택에 있는 우리 집보다 크고, 문 왼쪽에는 커다란 화단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한가운데에 복도가 있고, 문도 많이 있었다. 제일 가까운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텔레비전과 테이블이 있었다. 창문으로 화단과 집 현관문이 보였다. 반대쪽 창문으로는 붕붕 달리는 차가 보여서 멋있었다. 그 방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오므라이스였는데 맛있었다. 배부르게 먹어도 엄마가 화내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복도로 나가서 옆방으로 갔다. “여기가 나루키 방이야.” 하고 아저씨가 말했다. 방에는 침대가 있었다. 침대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기뻤다. 그리고 달려가는 차들이 창문으로 보여서 즐거웠다. 1월 28일 아침에 일어나 아저씨랑 엄마와 함께 밥을 먹었다. 폭신폭신한 달걀 요리와 구운 햄이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복도로 나가서 밥 먹는 방의 옆방으로 갔다. 커다란 창문으로 화단이 보였다. 방에 자전거 같은 게 있었다. 아저씨는 “실내 사이클이야.”라고 했다. 타 보니까 재미있었다. 그 방에 다른 문이 있었다. 열어 보니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그 방도 창문으로 화단이 보였고, 다른 창문으로는 강이 보였다. 저녁에 아저씨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와 헤어질 때 슬펐다. 밤에 엄마가, 내가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화내면서 숨을 못 쉬도록 코를 잡았다. 입으로 숨 쉬는 건 꼼수니까 열심히 입을 다물었다. (중략) 2월 24일 엄마가 낮에 들어와서 잠들었다. 이불을 덮어 주자 “고마워.” 하고 꼭 안아 주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같이 잤다. 저녁에 엄마랑 내 밥을 만들려고 식빵에 잼을 발라서 토스트기에 넣었더니 까맣게 탔다. 엄마 몰래 쓰레기로 버리려다가 들켜서 혼났다. “꼼수는 안 돼.”라는 말에 또 꼼수를 부린 것이 창피했다. 2월 25일 엄마가 “내일은 아저씨네 집에 가는 날이야.”라고 해서 기대됐다. 하지만 아저씨네 집에서 너무 재미있게 지내면 돌아와서 엄마한테 혼나니까 너무 재미있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2월 26일 엄마랑 아저씨네 집에 갔다. 화단을 보자 반가웠다. 셋이서 식당에 가서 라면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오므라이스를 또 먹고 싶었다. 아저씨와 같이 목욕한 후, 아저씨랑 엄마가 싸워서 엄마가 울었다. 아저씨는 내가 말라서 가엾다고 했다. 화해한 후 아저씨가 “이제부터는 양육비를 줄게.” 하고 말했다. 엄마는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2월 27일 아침밥으로 먹은 콘 수프와 달걀프라이가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또 타고 싶어서 밥 먹는 방의 옆방에 가서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탔다. 막 밥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조금 아팠다. 자전거를 탄 다음 그 방에 있는 다른 문을 열자 전에 있었던 방이 없고, 강이 쏴아쏴아 흘렀다. 이상했다. 저녁에 아저씨 차로 집에 돌아왔다. 헤어질 때 슬퍼서 울 뻔했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제대로 말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중략) 3월 3일 부엌에 빵이 하나도 없어서 오늘도 밥을 못 먹었다. 배가 고프다가 나중에는 아프길래, 연필을 핥고 씹어서 먹었다. 배 아픈 것이 조금 나아졌다. 3월 4일 아저씨한테 전화가 와서 “엄마 바꿔 줘.” 하고 시키길래 엄마를 바꿔 줬다. 엄마는 전화로 아저씨와 말싸움을 했다. 전화를 끊은 후에 엄마가 “이제 아저씨를 만나러 안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하고 말해서 슬펐다. 3월 5일 엄마가 나간 후에 아저씨가 왔다. “아저씨랑 같이 가자.”라고 하길래 아저씨네 집에 갔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아저씨가 괜찮다고 했고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준대서 가기로 했다. 아저씨네 집에서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그다음에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 아저씨는 “여기서 살아도 돼.” 하고 말했다. 학교에도 보내 주겠다고 했다. 엄마도 같이 산다면 아저씨네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가 복도 저 멀리 있는 방에 데려갔다. 작은 방이었는데 갈색 인형이 있어서 무서웠다. 아저씨는 “여기는 집의 심장이야.” 하고 말했다. “그래서 문을 잠그면 안 돼.”라고도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3월 6일 아저씨와 점심을 먹은 후 집 앞에 차가 섰다. 엄마랑 금색 머리 남자가 내렸다. 엄마와 남자는 아저씨와 싸웠다. 나는 엄마에게 안겨서 남자 차에 탔다. 아저씨가 쫓아왔지만, 차가 빨리 달려서 아저씨는 금방 보이지 않게 됐다. 차는 우리 집으로 가지 않고 남자의 집이 있는 연립주택으로 갔다. 엄마는 “이제부터 우리 셋이서 여기 살 거야.”라고 했다. 아저씨를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월 7일 남자의 이름은 에이지 씨라는 걸 배웠다. 에이지 씨가 밥을 줬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서 뱉었다. 엄마는 내게 화를 내고 에이지 씨에게 사과했다. 엄마가 에이지 씨한테 혼나는 게 싫어서 참고 먹었더니, 기분이 안 좋아져서 토했다. 그래서 엄마가 에이지 씨에게 혼났다. 내가 알아서 “죄송합니다.”를 백 번 말했다. 3월 8일 배가 아파서 설사할 것 같았지만, 나 때문에 귀찮아지면 에이지 씨가 엄마한테 화내니까 참았다. (중략) 3월 16일 에이지 씨가 시켜서 나는 벽장에서 지내기로 했다. 엄마가 “미안해.” 하고 울어서 나도 울 뻔했지만 참았다. 엄마가 몰래 빵을 하나 주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었다. 3월 17일 벽장 안에 가만히 앉아 있자 엉덩이와 등이 아팠지만, 소리를 내면 에이지 씨가 엄마를 때리니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전에 봤던 재미있는 텔레비전 방송 같은 걸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참았다. 3월 18일 소리를 내서 에이지 씨에게 맞았다. 엄마가 울면서 그만하라고 하자 에이지 씨는 엄마도 때렸다. 3월 19일 에이지 씨의 고함 소리와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들리지 않도록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었다. (중략) 4월 12일 오늘도 밥을 못 먹었다. 배가 고프고 아팠다. 재미있는 일을 생각하며 배가 아픈 걸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아저씨네 집에 가서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다. 4월 13일 배가 아픈 건 나았지만, 배가 빵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침에서 쓴맛이 났다. 4월 14일 엄마가 물을 주었다. 물은 원래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오늘은 단맛이 났다. 4월 15일 일어날 수가 없어서 벽장 구석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이불을 깔고 자고 싶었다. 4월 16일 엄마가 주먹밥을 줬지만 씹어도 삼킬 수가 없었다. 4월 17일 눈이 뻑뻑해서 글씨를 제대로 못 쓰겠다. 4월 18일 누워 있어도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 든다. 4월 19일 온몸이 아프다. 4월 20일 눈이 잘 안 보인다. 4월 21일 물 먹고 싶다. (일기는 여기서 끊겼다.) 필자 주 1994년 5월 8일.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 위치한 연립주택의 한 방에서 미쓰하시 나루키(9)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추정됐다. 시신의 전신에 타박상이 남은 것으로 보건대, 나루키 군은 평소 학대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 나루키 군의 어머니 미쓰하시 사오리 용의자와 그녀의 남자친구인 나카무라 에이지 용의자는 보호 책임자 유기 치사죄로 기소돼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14년이 확정됐다. 나루키 군이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죽기 얼마 전까지 나루키 군이 썼던 일기의 내용이 《소년의 독백~미쓰하시 나루키의 마지막 수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챕터는 그 서적에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2020년 시즈오카시 아오이구 북부에서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소년이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출근했던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 쓰하라 소년의 어머니, 할머니, 남동생, 총 세 명이었다. 옆집에서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가족 세 명은 이미 사망했고 쓰하라 소년은 저항 없이 체포됐다. 흉기는 부엌칼이었다. 부엌에 썰다 만 채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건대, 소년이 요리 중이던 어머니에게서 부엌칼을 빼앗아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세 사람의 시신은 다음과 같은 상태였다. 어머니……부엌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 가슴을 한 번 찔렸고, 옷에는 몸싸움을 벌인 흔적이 남아 있었음. 할머니……자기 방 이부자리에서 눈을 감고 누운 상태로 발견. 몸에 덮고 있던 이불 위로 여러 번 찔렸음. 평소 다리가 불편해서 걸어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인지, 일절 저항한 흔적 없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남동생……부엌 입구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 복부에 칼이 꽂혀 있었음. 쓰하라 소년도 상반신을 여러 군데 다쳤으므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에 경찰서로 호송됐다. 그는 경찰에게 “짜증이 치밀었다.”,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안 좋아서 집에 있어도 편하지가 않았다.” 등등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 Z세대가 끌어안은 절망감’, ‘가족 간 의사소통 부족’ 등 온갖 사회문제와 관련지은 논평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에서 희한한 소문이 퍼졌다. ‘쓰하라네의 집 구조에 문제가 있다’라는 소문이었다. 크게 화제가 되지 않고 바로 묻힌 소문이었지만, 당시 나는 《이상한 집》을 집필하면서 집 구조란 요소에 강한 흥미를 품고 있던 터라 아무래도 그 소문이 마음에 걸렸다. 개인적으로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쓸 만한 정보를 건지기는커녕 쓰하라네의 평면도조차 입수하지 못했다. 반쯤 포기했을 때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집은 경찰이 현장검증을 마친 후 특수 청소부가 청소한다. 즉, 쓰하라네를 청소한 인물은 집 구조가 어떤지 아는 셈이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 연락된 이무라 씨를 취재하기로 했다. 이상하다. 온갖 사이트에 들어가서 조사했지만 쓰하라네의 평면도는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집에 들어가 본 이무라 씨가 하는 말이니 진짜이리라. 내 검색 실력이 부족했던 걸까. 그나저나 집이 너무 별로야. 이런 집에 오래 살면 정신이 이상해질 법도 해. 그만큼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이지. 이 그림을 보고도 모르겠어? 그럼 이 집 사람이 된 셈 치고 한번 생각해 봐. 예를 들어 댁이 1층 거실에서 밥을 먹는다고 치자. 그러면 늘 밥맛 떨어질 것 같은 냄새가 풍겨. 무슨 원리인지 알겠어? 부엌과 욕실 같은 ‘수도 시설’이 북쪽에 집중돼 있어. 북쪽은 볕이 잘 안 들지. 그래서 겨울철에는 늘 물기가 마르지 않고, 여름철에는 푹푹 쪄. 덧붙여 화장실 냄새가 그런 습기에 섞여 복도를 타고 거실로 흘러들지. 거실 출입구에 문이 없으니까 냄새를 막을 수도 없어. 돈이 아까웠겠지.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줄여 보자는 생각이었을 거야. 거실에 문이 없어서 발생하는 폐해는 또 있어. 식사 시간에 신문 대금을 받거나 종교를 권유하러 온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어떨까? 먹다 만 밥이며 가족의 얼굴이 훤히 다 보여. 사생활이고 뭐고 없는 거지. 하다못해 부엌 쪽에 출입구가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계단 때문에 공간이 너무 빠듯해서 못 만들었을 거야. 좁은 땅에 억지로 집을 지으려고 하면 이런 결함이 생기지. 바꿔 말하면 일본의 주택은 결함이 생기기 쉽다는 뜻이야. 뭐, 그래도 우수한 설계사라면 어떻게든 결함을 보완하겠지만, 이 도면을 그린 녀석은 자질 미달이야. 예를 들면 이 공간에 ‘부엌’, ‘탈의실’, ‘화장실’의 출입구가 집중돼 있어. 가족끼리 충돌이 생겨서 싸움으로 발전하기도 했을 거야. 게다가 2층은 더 심각해. 이 정도 크기의 집이라면 방은 서너 개가 적당해. 그런데 방을 다섯 개나 욱여넣었지. 그래서 복도를 만들 공간이 없어졌을 거야. 복도가 없으니까 안쪽으로 가려면 다른 방을 통과해야 해. 앞쪽 방은 ‘통로’도 겸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도 문이 없잖아. 이른바 ‘사적인 공간’이 없는 셈이지. 필자 그건……. 마음이 편하질 않겠는데요. 이무라 베란다가 남향이 아닌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빨래는 남풍으로 바싹 말리는 게 최고인데 말이야. 뭐, 확실히 하루이틀 이 집에 사는 정도라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5년, 10년 계속 살다 보면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정서가 불안정해질 거야. 너무 과장된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집에는 그만한 힘이 있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제에 불과해. 중요한 건 쓰하라 일가가 이 집에서 생활한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야. 혹시 아이는 있나? 그럼 상상으로 대답해 봐. 두세 살짜리 아이가 집에서 놀 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음…… 근처에 위험한 물건이 없을 것, 아닐까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게 있지. 정답은 ‘부모가 시야에 들어올 것’이야. 아이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립심이 싹터서 혼자 놀고 싶어 하지. 그래도 완전히 혼자 있기는 아직 불안한 나이야. 그래서 두세 살짜리 아이는 거실에서 놀곤 해. 일본의 주택은 대부분 부엌과 거실이 인접해 있으니까 말이야. 근처에 부모가 있다는 안심감과 혼자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 이 두 가지가 양립해야 아이로서는 마음이 제일 편하거든. 그런데 이 집을 봐. 거실에서 부엌이 안 보여. 그렇다고 부엌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아이가 놀 만한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야. 쓰하라 소년은 어렸을 적에 불안감을 느끼며 지내지 않았을까? 쓰하라 일가의 할머니는 아버지의 어머니였어. 며느리 입장에서는 부엌일을 하는 내내 시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뜻이야. 친정어머니라도 거북할 텐데 시어머니라면 더하겠지. 게다가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거의 누워서 지냈어. 화장실에 데려가느라 가끔 부엌일이 중단됐을 거야. 며느리는 내심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려. 어머니가 늘 예민하게 구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즐겁게 놀겠어? 하지만 거실에 있으면 혼자라서 불안하지. 쓰하라 소년이 어린 시절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던 곳은 이 집에 없었을 거야. 확실히 쓰하라 소년은 경찰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안 좋아서 집에 있어도 편하지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면 자기 방이 생기지. 거기에도 문제가 있었어. 봐, 쓰하라 소년이 쓰던 방은 여기야. 이무라 씨가 가리킨 곳은 2층 수납실이었다. 이무라 청소하러 들어갔을 때 잠깐 봤을 뿐이지만 여기에 책상과 스탠드, 이불이 있더라고. 축구를 좋아했는지 J리그 포스터도 붙여 놨더군. 왜 수납실을 방으로? 아까도 말했듯이 2층에는 사생활이 보호되는 공간이 없어.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에게는 지옥이야. 문이 있어서 그나마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이 수납실뿐이지. 쓰하라 소년은 좋아서 여기를 자기 방으로 삼은 게 아니야. 여기밖에 고를 수 없었던 거지. 창문도 없는 좁고 어두운 방. 이런 곳에서 오래 지내면 누구든 기분이 침울해질걸? 유년기에 느꼈던 불안과 고독. 좁고 어두운 곳에서 지낸 사춘기. 집 전체가 안겨 주는 불편함. 그런 요소가 쌓이고 쌓여 쓰하라 소년은 서서히 비뚤어지고 말았다……. 그런 걸까.
2020년 시즈오카시 아오이구 북부에서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소년이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출근했던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 쓰하라 소년의 어머니, 할머니, 남동생, 총 세 명이었다. 옆집에서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가족 세 명은 이미 사망했고 쓰하라 소년은 저항 없이 체포됐다. 흉기는 부엌칼이었다. 부엌에 썰다 만 채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건대, 소년이 요리 중이던 어머니에게서 부엌칼을 빼앗아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세 사람의 시신은 다음과 같은 상태였다. 어머니……부엌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 가슴을 한 번 찔렸고, 옷에는 몸싸움을 벌인 흔적이 남아 있었음. 할머니……자기 방 이부자리에서 눈을 감고 누운 상태로 발견. 몸에 덮고 있던 이불 위로 여러 번 찔렸음. 평소 다리가 불편해서 걸어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인지, 일절 저항한 흔적 없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남동생……부엌 입구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 복부에 칼이 꽂혀 있었음. 쓰하라 소년도 상반신을 여러 군데 다쳤으므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에 경찰서로 호송됐다. 그는 경찰에게 “짜증이 치밀었다.”,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안 좋아서 집에 있어도 편하지가 않았다.” 등등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 Z세대가 끌어안은 절망감’, ‘가족 간 의사소통 부족’ 등 온갖 사회문제와 관련지은 논평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에서 희한한 소문이 퍼졌다. ‘쓰하라네의 집 구조에 문제가 있다’라는 소문이었다. 크게 화제가 되지 않고 바로 묻힌 소문이었지만, 당시 나는 《이상한 집》을 집필하면서 집 구조란 요소에 강한 흥미를 품고 있던 터라 아무래도 그 소문이 마음에 걸렸다. 개인적으로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쓸 만한 정보를 건지기는커녕 쓰하라네의 평면도조차 입수하지 못했다. 반쯤 포기했을 때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집은 경찰이 현장검증을 마친 후 특수 청소부가 청소한다. 즉, 쓰하라네를 청소한 인물은 집 구조가 어떤지 아는 셈이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 연락된 이무라 씨를 취재하기로 했다. 이상하다. 온갖 사이트에 들어가서 조사했지만 쓰하라네의 평면도는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집에 들어가 본 이무라 씨가 하는 말이니 진짜이리라. 내 검색 실력이 부족했던 걸까. 그나저나 집이 너무 별로야. 이런 집에 오래 살면 정신이 이상해질 법도 해. 그만큼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이지. 이 그림을 보고도 모르겠어? 그럼 이 집 사람이 된 셈 치고 한번 생각해 봐. 예를 들어 댁이 1층 거실에서 밥을 먹는다고 치자. 그러면 늘 밥맛 떨어질 것 같은 냄새가 풍겨. 무슨 원리인지 알겠어? 부엌과 욕실 같은 ‘수도 시설’이 북쪽에 집중돼 있어. 북쪽은 볕이 잘 안 들지. 그래서 겨울철에는 늘 물기가 마르지 않고, 여름철에는 푹푹 쪄. 덧붙여 화장실 냄새가 그런 습기에 섞여 복도를 타고 거실로 흘러들지. 거실 출입구에 문이 없으니까 냄새를 막을 수도 없어. 돈이 아까웠겠지.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줄여 보자는 생각이었을 거야. 거실에 문이 없어서 발생하는 폐해는 또 있어. 식사 시간에 신문 대금을 받거나 종교를 권유하러 온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어떨까? 먹다 만 밥이며 가족의 얼굴이 훤히 다 보여. 사생활이고 뭐고 없는 거지. 하다못해 부엌 쪽에 출입구가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계단 때문에 공간이 너무 빠듯해서 못 만들었을 거야. 좁은 땅에 억지로 집을 지으려고 하면 이런 결함이 생기지. 바꿔 말하면 일본의 주택은 결함이 생기기 쉽다는 뜻이야. 뭐, 그래도 우수한 설계사라면 어떻게든 결함을 보완하겠지만, 이 도면을 그린 녀석은 자질 미달이야. 예를 들면 이 공간에 ‘부엌’, ‘탈의실’, ‘화장실’의 출입구가 집중돼 있어. 가족끼리 충돌이 생겨서 싸움으로 발전하기도 했을 거야. 게다가 2층은 더 심각해. 이 정도 크기의 집이라면 방은 서너 개가 적당해. 그런데 방을 다섯 개나 욱여넣었지. 그래서 복도를 만들 공간이 없어졌을 거야. 복도가 없으니까 안쪽으로 가려면 다른 방을 통과해야 해. 앞쪽 방은 ‘통로’도 겸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도 문이 없잖아. 이른바 ‘사적인 공간’이 없는 셈이지. 필자 그건……. 마음이 편하질 않겠는데요. 이무라 베란다가 남향이 아닌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빨래는 남풍으로 바싹 말리는 게 최고인데 말이야. 뭐, 확실히 하루이틀 이 집에 사는 정도라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5년, 10년 계속 살다 보면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정서가 불안정해질 거야. 너무 과장된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집에는 그만한 힘이 있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제에 불과해. 중요한 건 쓰하라 일가가 이 집에서 생활한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야. 혹시 아이는 있나? 그럼 상상으로 대답해 봐. 두세 살짜리 아이가 집에서 놀 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음…… 근처에 위험한 물건이 없을 것, 아닐까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게 있지. 정답은 ‘부모가 시야에 들어올 것’이야. 아이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립심이 싹터서 혼자 놀고 싶어 하지. 그래도 완전히 혼자 있기는 아직 불안한 나이야. 그래서 두세 살짜리 아이는 거실에서 놀곤 해. 일본의 주택은 대부분 부엌과 거실이 인접해 있으니까 말이야. 근처에 부모가 있다는 안심감과 혼자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 이 두 가지가 양립해야 아이로서는 마음이 제일 편하거든. 그런데 이 집을 봐. 거실에서 부엌이 안 보여. 그렇다고 부엌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아이가 놀 만한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야. 쓰하라 소년은 어렸을 적에 불안감을 느끼며 지내지 않았을까? 쓰하라 일가의 할머니는 아버지의 어머니였어. 며느리 입장에서는 부엌일을 하는 내내 시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뜻이야. 친정어머니라도 거북할 텐데 시어머니라면 더하겠지. 게다가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거의 누워서 지냈어. 화장실에 데려가느라 가끔 부엌일이 중단됐을 거야. 며느리는 내심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려. 어머니가 늘 예민하게 구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즐겁게 놀겠어? 하지만 거실에 있으면 혼자라서 불안하지. 쓰하라 소년이 어린 시절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던 곳은 이 집에 없었을 거야. 확실히 쓰하라 소년은 경찰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안 좋아서 집에 있어도 편하지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면 자기 방이 생기지. 거기에도 문제가 있었어. 봐, 쓰하라 소년이 쓰던 방은 여기야. 이무라 씨가 가리킨 곳은 2층 수납실이었다. 이무라 청소하러 들어갔을 때 잠깐 봤을 뿐이지만 여기에 책상과 스탠드, 이불이 있더라고. 축구를 좋아했는지 J리그 포스터도 붙여 놨더군. 왜 수납실을 방으로? 아까도 말했듯이 2층에는 사생활이 보호되는 공간이 없어.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에게는 지옥이야. 문이 있어서 그나마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이 수납실뿐이지. 쓰하라 소년은 좋아서 여기를 자기 방으로 삼은 게 아니야. 여기밖에 고를 수 없었던 거지. 창문도 없는 좁고 어두운 방. 이런 곳에서 오래 지내면 누구든 기분이 침울해질걸? 유년기에 느꼈던 불안과 고독. 좁고 어두운 곳에서 지낸 사춘기. 집 전체가 안겨 주는 불편함. 그런 요소가 쌓이고 쌓여 쓰하라 소년은 서서히 비뚤어지고 말았다……. 그런 걸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니가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요. 어렸을 때 그 집에서 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년도였으니까, 대여섯 살 무렵이었으려나요. 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선후 관계가 모호하잖아요? 제 기억도 그렇습니다. 집에 있었던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왠지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니 서 있기가 힘들어져서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았어요. 현기증이 잦아들어서 문득 앞을 보자, 문이 있더라고요. ‘어? 이런 곳에 문이 있었나?’ 하고 신기해하며 다가가서 잡아당겼는데 안쪽은 작은 방이었습니다. 쪽방이나 뭐 그런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작았어요. 고작 다다미 반 장 정도 크기라서 정사각형 바닥에 어른이 세 명만 들어가도 꽉 찰 정도였죠. 천장은 꽤 높았지만요. 한 걸음 들어서자 발바닥이 써늘했던 게 기억나니까 방바닥은 마루 같은 재질이었으려나. 창문은 없고 새하얀 벽지만 발라 놓은 이상한 방이었어요.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니 방바닥에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더라고요. 상자 뚜껑을 열었는데…… 몹시 무서운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뭐였는지는 생각이 잘 안 나네요. 분명…… 이렇게 양손으로 쥐고 들어 올린 기억이 나니까 가느다랗고 긴 물체였나……. 감촉은 꽤 딱딱했던 것 같고요……. 너무 겁이 나서 바로 상자에 넣고, 그 방을 나와서 제 방으로 뛰어갔어요. 무서운 기분을 없애려고 당시 제일 좋아했던 개그 만화를 보고 있으려니, 잠시 후에 부모님이 돌아오셨죠. 부모님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해서 간이 커진 거겠죠. 그날 밤, 한 번 더 그 방에 들어가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집에 있는 문이라는 문은 전부 열어 봤지만, 그 기묘한 방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부모님께 물어보자 꿈이라도 꾼 거 아니냐며 웃으시더군요. 뭐, 확실히 현실성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꿈치고는 아주 실감 났어요. 방바닥에서 전해지는 냉기나 벽의 촉감이 지금도 떠오를 정도로요. 참고로 그 후에 그 방에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그때 딱 한 번뿐이었어요. 딱 한 번 나타난 방……. 참으로 오컬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다. 부모님 말대로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이루마 씨가 내 책을 읽은 후에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 ……어느덧 저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주신 책을 읽어 보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상한 집》에 비밀 방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불단으로 방 입구를 감춘다는……. 솔직히 평범한 서민층 집에 비밀 방이라니 비현실적인 생각이죠. 하지만 그날 일이 꿈이 아니라면,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돼요. 가능성을 따져 보자면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 취미 삼아 만들었다거나……. 왜, 비밀 방은 남자의 낭만을 자극하잖아요. 하지만 저희 집에 불단은 없었는데, 어떻게 방…… 이랄까, 문을 감춘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이루마 씨가 어릴 적에 딱 한 번 나타난 방……. 꿈이 아니었다면 왜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방이 나타난 건 이루마 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년도……. 여섯 살 때다. 이루마 씨는 2022년 5월에 스물네 살이 됐으므로 단순히 계산하면 18년 전……. 2004년에 발생한 일인 셈이다. 2004년 어느 날, 이루마 씨 집에서 ‘뭔가’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어떤 가능성을 알아차렸다. 인터넷으로 어떤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내 짐작이 옳다면 비밀 방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루마 씨의 부모님 집은 전원 풍경이 펼쳐진 묘코시의 한적한 곳에 있었다. 흰색과 남색 두 가지 색깔로 디자인한 외벽에 커다란 창문이 여러 개 달린 세련된 집이었다. 부모님이 결혼한 해에 신축으로 구입했고, 그로부터 8년 후 아들 이루마 씨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대규모 개축 공사를 했다고 한다. 광택이 흐르는 마룻바닥에 흰색 천 벽지. 외관과 마찬가지로 현대적이고 감각이 세련됐다. 시각은 오전 11시. 아버지는 저녁 8시쯤에 귀가한다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일단 이루마 씨의 안내를 받으며 집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노트에 간단한 평면도를 그렸다. 집 구경이 끝나자 이루마 씨는 나를 거실로 데려가서 홍차와 쿠키를 대접해 주었다. 남쪽과 북쪽의 유리문으로 각각 정원이 보여서 눈 호강을 할 수 있는 설계다. 제가 보기에 비밀 문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루마 씨의 기억과 평면도를 대조해 어디에 비밀 방이 있는지 추측하는 수밖에 없겠죠. 일단 요점을 정리해 볼까요. 이루마 씨의 기억에서 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판단한 건 다음 네 가지입니다. ①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가 괜찮아진 후 앞을 보자 문이 있었다. ② 문을 잡아당기자 작은 방이 나왔다. ③ 바닥은 다다미 반 장 크기의 정사각형이었다. ④ 방바닥에 놓인 작은 상자를 열자 무서운 것이 들어 있었다. 그 후 뛰어서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 일단 ④번 말인데요, ‘뛰어서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라고 했으니까 비밀 방과 이루마 씨 방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③번을 보면 ‘바닥은 다다미 반 장 크기의 정사각형’이라고 했으니, 문의 폭도 다다미 반 장 길이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죠. 자,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점은 문이 어떻게 숨겨져 있었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벽에 비밀 문이 달려 있었다면 뭘 어떻게 해도 윤곽이 보일 겁니다. 따라서 문이 숨겨져 있다면, 예컨대 기둥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벽 같은 곳이겠죠. 집을 구경할 때 그런 곳이 없을까 찾아봤는데요. 딱 한 군데 있었습니다. 거실 옆 복도의 끝부분입니다. 여기, 벽 너머에 부엌이 있으니 원래는 문을 다는 편이 편리하겠죠.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복도와 부엌 사이에 뭔가 있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면 작은 공간이라든가. 복도와 부엌 사이에는 분명 공간이 있다. 비밀 방이다. 나는 서둘러 복도로 나갔다. 복도 끝의 벽에는 좌우와 위쪽에 가느다란 나무틀이 있었다. 내 추측이 옳다면 나무틀에 둘러싸인 직사각형 모양 벽이 ‘문’인 셈이다. 이루마 씨는 벽에 손을 대고 힘껏 밀었다. 하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니가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요. 어렸을 때 그 집에서 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년도였으니까, 대여섯 살 무렵이었으려나요. 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선후 관계가 모호하잖아요? 제 기억도 그렇습니다. 집에 있었던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왠지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니 서 있기가 힘들어져서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았어요. 현기증이 잦아들어서 문득 앞을 보자, 문이 있더라고요. ‘어? 이런 곳에 문이 있었나?’ 하고 신기해하며 다가가서 잡아당겼는데 안쪽은 작은 방이었습니다. 쪽방이나 뭐 그런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작았어요. 고작 다다미 반 장 정도 크기라서 정사각형 바닥에 어른이 세 명만 들어가도 꽉 찰 정도였죠. 천장은 꽤 높았지만요. 한 걸음 들어서자 발바닥이 써늘했던 게 기억나니까 방바닥은 마루 같은 재질이었으려나. 창문은 없고 새하얀 벽지만 발라 놓은 이상한 방이었어요.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니 방바닥에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더라고요. 상자 뚜껑을 열었는데…… 몹시 무서운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뭐였는지는 생각이 잘 안 나네요. 분명…… 이렇게 양손으로 쥐고 들어 올린 기억이 나니까 가느다랗고 긴 물체였나……. 감촉은 꽤 딱딱했던 것 같고요……. 너무 겁이 나서 바로 상자에 넣고, 그 방을 나와서 제 방으로 뛰어갔어요. 무서운 기분을 없애려고 당시 제일 좋아했던 개그 만화를 보고 있으려니, 잠시 후에 부모님이 돌아오셨죠. 부모님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해서 간이 커진 거겠죠. 그날 밤, 한 번 더 그 방에 들어가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집에 있는 문이라는 문은 전부 열어 봤지만, 그 기묘한 방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부모님께 물어보자 꿈이라도 꾼 거 아니냐며 웃으시더군요. 뭐, 확실히 현실성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꿈치고는 아주 실감 났어요. 방바닥에서 전해지는 냉기나 벽의 촉감이 지금도 떠오를 정도로요. 참고로 그 후에 그 방에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그때 딱 한 번뿐이었어요. 딱 한 번 나타난 방……. 참으로 오컬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다. 부모님 말대로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이루마 씨가 내 책을 읽은 후에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 ……어느덧 저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주신 책을 읽어 보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상한 집》에 비밀 방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불단으로 방 입구를 감춘다는……. 솔직히 평범한 서민층 집에 비밀 방이라니 비현실적인 생각이죠. 하지만 그날 일이 꿈이 아니라면,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돼요. 가능성을 따져 보자면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 취미 삼아 만들었다거나……. 왜, 비밀 방은 남자의 낭만을 자극하잖아요. 하지만 저희 집에 불단은 없었는데, 어떻게 방…… 이랄까, 문을 감춘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이루마 씨가 어릴 적에 딱 한 번 나타난 방……. 꿈이 아니었다면 왜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방이 나타난 건 이루마 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년도……. 여섯 살 때다. 이루마 씨는 2022년 5월에 스물네 살이 됐으므로 단순히 계산하면 18년 전……. 2004년에 발생한 일인 셈이다. 2004년 어느 날, 이루마 씨 집에서 ‘뭔가’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어떤 가능성을 알아차렸다. 인터넷으로 어떤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내 짐작이 옳다면 비밀 방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루마 씨의 부모님 집은 전원 풍경이 펼쳐진 묘코시의 한적한 곳에 있었다. 흰색과 남색 두 가지 색깔로 디자인한 외벽에 커다란 창문이 여러 개 달린 세련된 집이었다. 부모님이 결혼한 해에 신축으로 구입했고, 그로부터 8년 후 아들 이루마 씨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대규모 개축 공사를 했다고 한다. 광택이 흐르는 마룻바닥에 흰색 천 벽지. 외관과 마찬가지로 현대적이고 감각이 세련됐다. 시각은 오전 11시. 아버지는 저녁 8시쯤에 귀가한다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일단 이루마 씨의 안내를 받으며 집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노트에 간단한 평면도를 그렸다. 집 구경이 끝나자 이루마 씨는 나를 거실로 데려가서 홍차와 쿠키를 대접해 주었다. 남쪽과 북쪽의 유리문으로 각각 정원이 보여서 눈 호강을 할 수 있는 설계다. 제가 보기에 비밀 문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루마 씨의 기억과 평면도를 대조해 어디에 비밀 방이 있는지 추측하는 수밖에 없겠죠. 일단 요점을 정리해 볼까요. 이루마 씨의 기억에서 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판단한 건 다음 네 가지입니다. ①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가 괜찮아진 후 앞을 보자 문이 있었다. ② 문을 잡아당기자 작은 방이 나왔다. ③ 바닥은 다다미 반 장 크기의 정사각형이었다. ④ 방바닥에 놓인 작은 상자를 열자 무서운 것이 들어 있었다. 그 후 뛰어서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 일단 ④번 말인데요, ‘뛰어서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라고 했으니까 비밀 방과 이루마 씨 방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③번을 보면 ‘바닥은 다다미 반 장 크기의 정사각형’이라고 했으니, 문의 폭도 다다미 반 장 길이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죠. 자,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점은 문이 어떻게 숨겨져 있었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벽에 비밀 문이 달려 있었다면 뭘 어떻게 해도 윤곽이 보일 겁니다. 따라서 문이 숨겨져 있다면, 예컨대 기둥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벽 같은 곳이겠죠. 집을 구경할 때 그런 곳이 없을까 찾아봤는데요. 딱 한 군데 있었습니다. 거실 옆 복도의 끝부분입니다. 여기, 벽 너머에 부엌이 있으니 원래는 문을 다는 편이 편리하겠죠.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복도와 부엌 사이에 뭔가 있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면 작은 공간이라든가. 복도와 부엌 사이에는 분명 공간이 있다. 비밀 방이다. 나는 서둘러 복도로 나갔다. 복도 끝의 벽에는 좌우와 위쪽에 가느다란 나무틀이 있었다. 내 추측이 옳다면 나무틀에 둘러싸인 직사각형 모양 벽이 ‘문’인 셈이다. 이루마 씨는 벽에 손을 대고 힘껏 밀었다. 하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찍이 일본에는 ‘갈보집’이라 불리는 시설이 존재했다. 거기에 거주하는 여성은 남자 손님과 성행위를 함으로써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1958년에 매춘 방지법이 시행되자 갈보집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소프랜드와 패션헬스 등의 풍속 산업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형태로 갈보집을 대체해 나갔는데,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일부 반사회 조직이 ‘오키토’라는 매춘 시설을 운영했다. 아케미 씨와 미쓰루 씨가 끌려간 곳은 야마나시현 중앙의 산간부에 위치한, 2층짜리 연립주택을 개조한 오키토였다. 층마다 방이 네 개씩이었는데 1층에는 감시를 맡은 조직원이, 2층에는 아케미 씨처럼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굳이 연립주택을 개조한 건, ‘연립주택에 사는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잠자리를 가질 뿐이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라고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겠지. 잠깐만 조사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겠지만, 당시는 경찰도 조직폭력배를 배려해 줬거든.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묵인했을 거야. 아케미 씨와 미쓰루 씨에게는 2층 끝 방이 주어졌다. 곰팡내가 풍기는 다다미방이었어. 거기에 변소와 욕실, 벽장, 그리고 조잡한 부엌도 있었지. 식사라면서 매일 두 명분의 도시락을 넣어 주었지만, 다 식은 거라서 가스레인지로 반찬을 데워 먹었다니까. 그리고 작은 ‘침실’이 있었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침실’은 자기 위한 곳이 아니야. 수상쩍은 장난감과 침대 하나뿐인 침침한 방. 손님을 거기로 맞아들여 상대하는 거야. 벽을 둘러놔서 미쓰루가 못 보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어. 뭐, 엄마가 매일 밤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눈치챘겠지만. 나는 주방을 힐끗 보았다. 아케미 씨의 목소리가 들릴 테지만, 미쓰루 씨는 아무 반응 없이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쓰루 씨에게 미안했다. 좀 더 세심하게 인터뷰 장소를 골라야 했는데. 손님은 늦은 밤에야 찾아왔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고급 차를 타고 나타났지. 오키토는 부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거든. 한 번에 십만 엔을 받았다나 봐. 그중 90퍼센트는 조직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뺏어 가고, 10퍼센트가 빚을 갚는 데에 사용돼.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 방에 가둬 놓는 거야. 하지만 가둬 놓는다고 해도 밖에 자물쇠를 달면 감금죄에 해당하니까 놈들도 그런 점에서는 머리를 썼지. 아케미 씨 설명에 따르면 문에 자물쇠를 다는 대신, 연립주택 출입구에 늘 감시꾼이 서 있었다고 한다. 1층에 사는 조직원들이 교대로 감시한 것이다. 2층에 사는 사람은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뿐이라, 가령 모두 힘을 합쳐 탈출을 꾀했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아케미 씨는 말했다. 조직도 그걸 잘 알고 있었겠지만, 만약에 대비해 어떤 예방책을 실시했다. 우리 방에는 창문이 하나뿐이었는데, 그 창문으로 옆방이 보였어. 자기 방과 옆방을 구분하는 벽에는 개폐식 창문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조직은 ‘이웃 사람이 달아나려 한다’라는 증거를 잡으면 빚을 절반 탕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위 상호 감시 체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망치려 한다는 증거를 잡기란 쉽지 않아. 카메라고 녹음기고 없었으니까. 게다가 ‘빚을 절반 탕감’해 주다니, 놈들이 그런 인심 좋은 짓을 할 리 없지. 요컨대 ‘이런 규칙을 만들어 두면 누명을 쓸까 무서워서 수상한 행동을 못 할 것’이라는 속셈이야. 뭐, 우리 이웃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지냈지만. 아케미 씨의 이웃 사람은 아케미 씨보다 여섯 살 많은 여성이었다. 야에코 씨라고 참 예쁜 사람이었어. 그 사람도 열한 살 먹은 딸과 함께 지냈지. 부모라는 입장상 서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둘 다 도망치려 한다는 증거를 찾아내겠답시고 눈에 불을 켜지는 않았어. 오히려 창문을 열어 놓고 자주 수다를 떨었지. 야에코 씨에게는 어떤 신체적인 특징이 있었다. 얼마쯤 지나서야 알아차렸는데, 야에코 씨는…… 왼팔이 없었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잃었대. 야에코 씨는 나가노현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열여덟 살 때 부모님이 어떤 사실을 알려 준다. 야에코 씨는 버려진 아이였대. 오두막……이라고 했었지. 숲속의 오두막에 버려진 걸 주워 와서 키웠다나 봐. 즉, 그때까지 부모님으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들은 양부모였다는……. 뭐, 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집을 나왔대. ‘양부모가 지금도 원망스럽다’고 했어. 글쎄. 본인밖에 모르는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굳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어. 내가 무슨 취조관도 아니잖아? 집을 나온 후에는 도쿄로 상경해서 직장을 찾았지만, 몸에 장애가 있는 만큼 많이 고생했다나 봐.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어 주는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서 겨우 식비를 벌었다는군. 야에코 씨가 스물한 살 때,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사자오가 사랑에 빠져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아케미 씨와 야에코 씨가 생활한 오키토는 원칙상 외출 금지다. 하지만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면 외출을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그 조건은 바로 ‘아이 교환’이다. 예를 들어 ‘A씨 가족’과 ‘B씨 가족’이 이웃이라고 치자. A씨가 외출하고 싶을 때는 옆방에 사는 B씨의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그동안 B씨는 A씨의 아이가 달아나지 않도록 감시한다. A씨는 자기 아이가 방에 남아 있으므로 혼자 도망칠 수 없다. B씨의 아이도 부모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없으므로 도망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육친을 인질로 삼아서 정신적인 족쇄를 채우는 시스템인 것이다. 만에 하나 A씨가 자기 아이를 버리고 도망치면 B씨가 A씨의 빚을 떠안아야 하므로, 이웃끼리 아주 친하지 않으면 교환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케미 씨와 야에코 씨는 서로 믿었으므로 가끔 이 제도를 이용했다고 한다.
일찍이 일본에는 ‘갈보집’이라 불리는 시설이 존재했다. 거기에 거주하는 여성은 남자 손님과 성행위를 함으로써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1958년에 매춘 방지법이 시행되자 갈보집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소프랜드와 패션헬스 등의 풍속 산업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형태로 갈보집을 대체해 나갔는데,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일부 반사회 조직이 ‘오키토’라는 매춘 시설을 운영했다. 아케미 씨와 미쓰루 씨가 끌려간 곳은 야마나시현 중앙의 산간부에 위치한, 2층짜리 연립주택을 개조한 오키토였다. 층마다 방이 네 개씩이었는데 1층에는 감시를 맡은 조직원이, 2층에는 아케미 씨처럼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굳이 연립주택을 개조한 건, ‘연립주택에 사는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잠자리를 가질 뿐이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라고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겠지. 잠깐만 조사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겠지만, 당시는 경찰도 조직폭력배를 배려해 줬거든.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묵인했을 거야. 아케미 씨와 미쓰루 씨에게는 2층 끝 방이 주어졌다. 곰팡내가 풍기는 다다미방이었어. 거기에 변소와 욕실, 벽장, 그리고 조잡한 부엌도 있었지. 식사라면서 매일 두 명분의 도시락을 넣어 주었지만, 다 식은 거라서 가스레인지로 반찬을 데워 먹었다니까. 그리고 작은 ‘침실’이 있었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침실’은 자기 위한 곳이 아니야. 수상쩍은 장난감과 침대 하나뿐인 침침한 방. 손님을 거기로 맞아들여 상대하는 거야. 벽을 둘러놔서 미쓰루가 못 보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어. 뭐, 엄마가 매일 밤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눈치챘겠지만. 나는 주방을 힐끗 보았다. 아케미 씨의 목소리가 들릴 테지만, 미쓰루 씨는 아무 반응 없이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쓰루 씨에게 미안했다. 좀 더 세심하게 인터뷰 장소를 골라야 했는데. 손님은 늦은 밤에야 찾아왔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고급 차를 타고 나타났지. 오키토는 부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거든. 한 번에 십만 엔을 받았다나 봐. 그중 90퍼센트는 조직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뺏어 가고, 10퍼센트가 빚을 갚는 데에 사용돼.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 방에 가둬 놓는 거야. 하지만 가둬 놓는다고 해도 밖에 자물쇠를 달면 감금죄에 해당하니까 놈들도 그런 점에서는 머리를 썼지. 아케미 씨 설명에 따르면 문에 자물쇠를 다는 대신, 연립주택 출입구에 늘 감시꾼이 서 있었다고 한다. 1층에 사는 조직원들이 교대로 감시한 것이다. 2층에 사는 사람은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뿐이라, 가령 모두 힘을 합쳐 탈출을 꾀했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아케미 씨는 말했다. 조직도 그걸 잘 알고 있었겠지만, 만약에 대비해 어떤 예방책을 실시했다. 우리 방에는 창문이 하나뿐이었는데, 그 창문으로 옆방이 보였어. 자기 방과 옆방을 구분하는 벽에는 개폐식 창문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조직은 ‘이웃 사람이 달아나려 한다’라는 증거를 잡으면 빚을 절반 탕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위 상호 감시 체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망치려 한다는 증거를 잡기란 쉽지 않아. 카메라고 녹음기고 없었으니까. 게다가 ‘빚을 절반 탕감’해 주다니, 놈들이 그런 인심 좋은 짓을 할 리 없지. 요컨대 ‘이런 규칙을 만들어 두면 누명을 쓸까 무서워서 수상한 행동을 못 할 것’이라는 속셈이야. 뭐, 우리 이웃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지냈지만. 아케미 씨의 이웃 사람은 아케미 씨보다 여섯 살 많은 여성이었다. 야에코 씨라고 참 예쁜 사람이었어. 그 사람도 열한 살 먹은 딸과 함께 지냈지. 부모라는 입장상 서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둘 다 도망치려 한다는 증거를 찾아내겠답시고 눈에 불을 켜지는 않았어. 오히려 창문을 열어 놓고 자주 수다를 떨었지. 야에코 씨에게는 어떤 신체적인 특징이 있었다. 얼마쯤 지나서야 알아차렸는데, 야에코 씨는…… 왼팔이 없었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잃었대. 야에코 씨는 나가노현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열여덟 살 때 부모님이 어떤 사실을 알려 준다. 야에코 씨는 버려진 아이였대. 오두막……이라고 했었지. 숲속의 오두막에 버려진 걸 주워 와서 키웠다나 봐. 즉, 그때까지 부모님으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들은 양부모였다는……. 뭐, 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집을 나왔대. ‘양부모가 지금도 원망스럽다’고 했어. 글쎄. 본인밖에 모르는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굳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어. 내가 무슨 취조관도 아니잖아? 집을 나온 후에는 도쿄로 상경해서 직장을 찾았지만, 몸에 장애가 있는 만큼 많이 고생했다나 봐.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어 주는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서 겨우 식비를 벌었다는군. 야에코 씨가 스물한 살 때,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사자오가 사랑에 빠져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아케미 씨와 야에코 씨가 생활한 오키토는 원칙상 외출 금지다. 하지만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면 외출을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그 조건은 바로 ‘아이 교환’이다. 예를 들어 ‘A씨 가족’과 ‘B씨 가족’이 이웃이라고 치자. A씨가 외출하고 싶을 때는 옆방에 사는 B씨의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그동안 B씨는 A씨의 아이가 달아나지 않도록 감시한다. A씨는 자기 아이가 방에 남아 있으므로 혼자 도망칠 수 없다. B씨의 아이도 부모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없으므로 도망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육친을 인질로 삼아서 정신적인 족쇄를 채우는 시스템인 것이다. 만에 하나 A씨가 자기 아이를 버리고 도망치면 B씨가 A씨의 빚을 떠안아야 하므로, 이웃끼리 아주 친하지 않으면 교환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케미 씨와 야에코 씨는 서로 믿었으므로 가끔 이 제도를 이용했다고 한다.
《명모 두류 일기》 제14장 〈한이 지방의 추억〉에서 발췌 저자: 미즈나시 우키 쇼와 13년(1938년) 8월 23일 사흘쯤 내리던 비가 그쳐서 저는 숙모님께 잠깐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질척질척해진 땅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가다 보니, 어느 틈엔가 눈앞에 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이 나타났습니다. 그 오두막의 벽에는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도호쿠 지방에 사는 친척 집에 초대받았을 때 비슷한 오두막을 본 적이 있어서 물레방앗간(주석 참조)이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주석: 물레방앗간이란 반가운 마음에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물레방아 주변에 물이 없었던 겁니다. 물레방아는 물의 힘으로 작동시키는 도구니까 강이나 저수지같이 물이 많은 곳 부근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를 둘러봐도 물이라고는 없어서, 과연 이것이 물레방아인지조차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어쩌면 이 커다란 물레방아는 장식 아닐까. 그런 생각에 오두막에 다가가 보자, 물레방아 왼쪽에 작은 격자창이 있었습니다. 격자창을 들여다보자 안에는 방이 있었습니다. 옆으로 길쭉하고 좁은 그 방에는 현기증이 날 것처럼 수많은 톱니바퀴가 예술 작품처럼 복잡하게 짜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만큼 치밀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모습을 도호쿠 지방의 물레방앗간에서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커다란 물레방아는 물론 장식이 아니겠지요. 격자창에서 물러나 주별을 둘러보자 오두막 왼편에 사당 같은 것이 있어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얗고 깨끗한 나무로 만든 몸체에 귀여운 삼각 지붕을 얹은 사당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당 안에는 석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동그란 과일을 한 손에 든 여신상이었습니다. 여신상은 오두막 쪽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양손을 모아 참배한 후, 오두막 반대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는 입구가 있었습니다. 널빤지로 만든 간소한 미닫이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예의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서 얼른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쪽은 다다미 석 장 크기의 마루방이었습니다. 아까 격자창으로 보았던 복잡한 구조의 톱니바퀴는 없었습니다. 톱니바퀴가 있는 방과는 벽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겠지요. 출입구 외에는 창문, 가구, 램프, 장식 등등 아무것도 없는 방이라 마치 네모난 상자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다만 오른쪽 벽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이 유일한 특징이었습니다. 구멍이라고 해도 뻥 뚫려서 밖이 보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움풀 팬 공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벽 한가운데를 네모나게 파낸 듯한 그 ‘공간’은 제가 몸을 작게 웅크리면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에 사용된 것일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꽃을 꽂은 꽃병을 놓아둔다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이 방에 꽃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광경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방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점차 묘한 기문이 들었습니다. 밖에서 본 오두막과 오두막 내부의 모습이 어쩐지 짝짝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아. 저는 드디어 알아차렸습니다. 이 방은 밖에서 본 오두막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작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있는 방 왼편에는 다른 방이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거기로 들어가는 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오두막 바깥쪽에 출입구가 있는 걸까요. 저는 오두막 외벽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벽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도 출입구는 눈에 띄지 않았고, 저는 물레방아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두막을 한 바퀴 돌면서 알아낸 것이라고는 참으로 희한한 물레방앗간도 다 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물도 없는 곳에 달린 물레방아며, 벽에 움푹 팬 공간이며, 들어갈 곳 없는 방이며,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여기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호기심을 억누르고 이만 숙부님 댁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걸음을 옮기려 해도 어째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발을 내려다봤더니 어젯밤에 내린 비로 진창이 된 땅에 신발이 푹 빠져서 달라붙은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왼발을 진창에서 빼내려고 오른발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쑥’ 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이 진창에서 빠진 건 다행이지만, 기세를 못 이기고 자세가 무너져서 넘어질 뻔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눈앞에 있던 물레방아를 양손으로 짚어서 간신히 옷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심했던 것도 잠시,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었습니다. 제 몸무게 때문에 물레방아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격자창 너머의 톱니바퀴들이 마치 거대한 벌레처럼 제각기 빙글빙글 움직였습니다. 저는 허둥지둥 물레방아에서 양손을 떼고 오두막 벽에 몸을 기댔습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습니다. 저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벽에 몸을 기댄 자세로 쉬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마음이 진정되자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아까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톱니바퀴가 회전했는데, 그 결과 무엇이 움직였을까, 라는 의문입니다. 도호쿠 지방의 친척 집에서 본 물레방앗간은 톱니바퀴가 회전하면 탈곡기가 움직였습니다. 또 다른 종류로는 방직기를 움직이는 물레방앗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이 물레방앗간은 그저 톱니바퀴가 회전할 뿐, 톱니바퀴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물체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물레방앗간. 그런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아까 물레방아가 돌아갔을 때,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은 물레방아에서 난 소리도, 톱니바퀴에서 난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좀 더 먼 곳에서 들린 소리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문득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아아. 어쩌면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저는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벽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까 보았던 사당 앞을 지나 다시 오두막 반대편으로 향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입구 왼쪽에 아까는 없었던 아주 작은 틈이 생겼습니다. 출입구가 넓어진 것은 아닙니다. 벽이 움직인 것입니다.
《명모 두류 일기》 제14장 〈한이 지방의 추억〉에서 발췌 저자: 미즈나시 우키 쇼와 13년(1938년) 8월 23일 사흘쯤 내리던 비가 그쳐서 저는 숙모님께 잠깐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질척질척해진 땅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가다 보니, 어느 틈엔가 눈앞에 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이 나타났습니다. 그 오두막의 벽에는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도호쿠 지방에 사는 친척 집에 초대받았을 때 비슷한 오두막을 본 적이 있어서 물레방앗간(주석 참조)이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주석: 물레방앗간이란 반가운 마음에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물레방아 주변에 물이 없었던 겁니다. 물레방아는 물의 힘으로 작동시키는 도구니까 강이나 저수지같이 물이 많은 곳 부근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를 둘러봐도 물이라고는 없어서, 과연 이것이 물레방아인지조차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어쩌면 이 커다란 물레방아는 장식 아닐까. 그런 생각에 오두막에 다가가 보자, 물레방아 왼쪽에 작은 격자창이 있었습니다. 격자창을 들여다보자 안에는 방이 있었습니다. 옆으로 길쭉하고 좁은 그 방에는 현기증이 날 것처럼 수많은 톱니바퀴가 예술 작품처럼 복잡하게 짜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만큼 치밀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모습을 도호쿠 지방의 물레방앗간에서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커다란 물레방아는 물론 장식이 아니겠지요. 격자창에서 물러나 주별을 둘러보자 오두막 왼편에 사당 같은 것이 있어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얗고 깨끗한 나무로 만든 몸체에 귀여운 삼각 지붕을 얹은 사당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당 안에는 석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동그란 과일을 한 손에 든 여신상이었습니다. 여신상은 오두막 쪽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양손을 모아 참배한 후, 오두막 반대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는 입구가 있었습니다. 널빤지로 만든 간소한 미닫이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예의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서 얼른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쪽은 다다미 석 장 크기의 마루방이었습니다. 아까 격자창으로 보았던 복잡한 구조의 톱니바퀴는 없었습니다. 톱니바퀴가 있는 방과는 벽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겠지요. 출입구 외에는 창문, 가구, 램프, 장식 등등 아무것도 없는 방이라 마치 네모난 상자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다만 오른쪽 벽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이 유일한 특징이었습니다. 구멍이라고 해도 뻥 뚫려서 밖이 보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움풀 팬 공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벽 한가운데를 네모나게 파낸 듯한 그 ‘공간’은 제가 몸을 작게 웅크리면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에 사용된 것일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꽃을 꽂은 꽃병을 놓아둔다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이 방에 꽃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광경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방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점차 묘한 기문이 들었습니다. 밖에서 본 오두막과 오두막 내부의 모습이 어쩐지 짝짝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아. 저는 드디어 알아차렸습니다. 이 방은 밖에서 본 오두막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작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있는 방 왼편에는 다른 방이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거기로 들어가는 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오두막 바깥쪽에 출입구가 있는 걸까요. 저는 오두막 외벽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벽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도 출입구는 눈에 띄지 않았고, 저는 물레방아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두막을 한 바퀴 돌면서 알아낸 것이라고는 참으로 희한한 물레방앗간도 다 있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물도 없는 곳에 달린 물레방아며, 벽에 움푹 팬 공간이며, 들어갈 곳 없는 방이며,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여기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호기심을 억누르고 이만 숙부님 댁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걸음을 옮기려 해도 어째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발을 내려다봤더니 어젯밤에 내린 비로 진창이 된 땅에 신발이 푹 빠져서 달라붙은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왼발을 진창에서 빼내려고 오른발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쑥’ 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이 진창에서 빠진 건 다행이지만, 기세를 못 이기고 자세가 무너져서 넘어질 뻔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눈앞에 있던 물레방아를 양손으로 짚어서 간신히 옷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심했던 것도 잠시,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었습니다. 제 몸무게 때문에 물레방아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격자창 너머의 톱니바퀴들이 마치 거대한 벌레처럼 제각기 빙글빙글 움직였습니다. 저는 허둥지둥 물레방아에서 양손을 떼고 오두막 벽에 몸을 기댔습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습니다. 저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벽에 몸을 기댄 자세로 쉬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마음이 진정되자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아까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톱니바퀴가 회전했는데, 그 결과 무엇이 움직였을까, 라는 의문입니다. 도호쿠 지방의 친척 집에서 본 물레방앗간은 톱니바퀴가 회전하면 탈곡기가 움직였습니다. 또 다른 종류로는 방직기를 움직이는 물레방앗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이 물레방앗간은 그저 톱니바퀴가 회전할 뿐, 톱니바퀴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물체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물레방앗간. 그런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아까 물레방아가 돌아갔을 때,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은 물레방아에서 난 소리도, 톱니바퀴에서 난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좀 더 먼 곳에서 들린 소리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문득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아아. 어쩌면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저는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벽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까 보았던 사당 앞을 지나 다시 오두막 반대편으로 향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입구 왼쪽에 아까는 없었던 아주 작은 틈이 생겼습니다. 출입구가 넓어진 것은 아닙니다. 벽이 움직인 것입니다.
8개의 도면에서 얻은 힌트를 조합하여
위화감의 정체를 추리하세요.